“쌀 때 자녀에 우량주 사주자”… 부모들로 붐비는 객장

국민일보

“쌀 때 자녀에 우량주 사주자”… 부모들로 붐비는 객장

미성년 명의 계좌 만들어 사뒀다 성장한 후 목돈 만들어주기 전략

입력 2020-03-26 04:05

지난 24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의 한 증권사 지점. 점심시간에 짬을 내 주식계좌 관련 문의를 하는 사람들로 상담 창구가 가득 찼다. 번호표를 쥔 채 순번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지점 직원 A씨는 “방문 고객이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요즘 하루에 40~50명씩 오시는 거 같아요. 평소엔 그 절반도 안 됐죠. 다른 지점은 점심도 못 먹을 정도로 바쁘대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대세인 요즘 증권가 지점을 찾는 사람은 증가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비대면’ 방식으로 주식계좌를 만드는 게 일반화된 상황에서 ‘방문 고객’이 되레 늘어난 것이다. 한 증권사 직원은 “전화 상담뿐 아니라 내점 고객 자체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증권사를 찾는 고객 상당수는 최근 주가가 많이 내려간 상황을 좋은 타이밍으로 보고 어린 자녀에게 주식을 사주는 부모들이다. 증여세를 내지 않는 한도만큼 국내외 우량주를 사준 뒤 시간이 흘러 자녀가 대학에 입학하거나 독립할 때 목돈을 쥘 수 있도록 ‘투자 포트폴리오’를 미리 짜주려는 것이다. 미성년 자녀는 10년간 2000만원, 성인 자녀는 5000만원까지 비과세 대상이다. 대신 미성년 자녀 명의로 계좌를 개설하려면 직접 부모가 증권사 지점을 찾아 가족관계증명서 등 관련 서류를 내야 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실질 금리가 ‘제로(0)’ 수준으로 떨어진 데다 온라인 커뮤니티·유튜브 등을 통해 이러한 방법이 ‘실속 증여’ 수단으로 퍼진 거 같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증권사 직원은 “요즘은 미성년 자녀 계좌에 투자할 종목도 부모들이 알아서 다 골라서 오신다”며 “단순한 ‘묻지마 투자’가 아니라 국내외 우량주, 상장지수펀드(ETF)까지 더 잘 알고 오시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박지환 택스힐세무회계 대표세무사는 “증여 시점의 주식 가격은 전후 2개월간 평균 가격으로 산출한다”며 “비과세 범위에 있고, 증여세 신고서를 제출하는 등의 절차만 잘 지킨다면 (이후 시세 차익이 나도) 추가 과세는 없다”고 말했다.

저축밖에 모르던 장년층까지 주식에 뛰어들고 있다. 서울 광화문의 한 증권사 지점에서 만난 A씨(63)는 “이제 막 (주식을) 시작하려고 왔다”며 “예전에 만든 계좌 비밀번호를 HTS(홈트레이딩시스템)에 잘못 입력해서 지점에 물어보러 왔다”고 말했다. “얼마 전 재취업했어요. 앞으로 5년은 더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매달 200만원씩 넣으려고요. 적립식으로 꾸준히, 떨어져도 신경 안 쓰고.”

자녀 증여 흐름에 중장년 투자자들까지 가세하면서 국내 주식계좌 예탁금은 연일 치솟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4일 기준 투자자 예탁금은 40조9912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10일(32조9093억원)과 비교하면 보름도 안 돼 8조원 넘게 폭증했다.

갑작스럽게 몰려든 개미를 바라보는 증권가의 시선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주식 투자란 기업과 산업의 전망 및 분석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단순히 우량주만 사두면 오를 거라는 생각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자녀의 계좌 개설은 부모와 자녀가 금융 지식을 쌓는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부분”이라며 “이를 통해 증시 활성화가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양민철 조민아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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