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광장이 사라졌다

국민일보

[시가 있는 휴일] 광장이 사라졌다

입력 2020-03-26 19:34

광장을 먹고 튄 자들이 있다

광장은 모두의 것이 아니다
광장은 작고 바닥을 기고 발톱도 없는 자들이
우화하는 숲이다 떼로 변신하는 곳이다
벌떼처럼 봉기하는 곳이다
그러나 광장은 그들의 것만도 아니다

그 광장에 힘 있는 자들이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힘 있는 자가 약자를 모방하기 시작할 때
거대한 재앙이 세상을 덮친다

약자의 울분을 모방한 자들이
광장을 먹고 튀었다

백무산의 ‘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 중

시인은 몇 년 전 ‘촛불’의 성과를 “먹고 튄 자들”이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들은 “약자의 울분을 모방한 자들”이다. 시인은 이런 사람들 탓에 “거대한 재앙이 세상을 덮친다”고 주장한다. 저 시는 한국 노동시를 대표하는 백무산의 열 번째 시집 ‘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에 실려 있다. 시집 말미에 실린 ‘시인의 말’에 백무산은 이렇게 적었다. “시가 나에게 찾아온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억압된 현실을 마주해서 찌꺼기들을 재료로 무슨 연금술이라도 부려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빛나는 무엇이 아니라, 금을 똥으로 만드는 뒤집힌 연금술이기도 했다.”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