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여 고향으로 돌아가라

국민일보

은퇴자여 고향으로 돌아가라

[책과 길] 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 / 마강래 지음, 개마고원, 252쪽, 1만4000원

입력 2020-03-26 19:30
‘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에는 저렇듯 베이비부머의 특성이나 이들이 처한 현실을 드러내는 그림이 많이 실려 있다. 마강래 교수는 “노후빈곤과 연금 및 복지재정 고갈이라는 현실 속에서 (베이비부머가) ‘문제아’들이 되어가고 있다”고 적었다. 개마고원 제공

첫 챕터엔 박형서의 소설 ‘당신의 노후’를 소개한 내용이 등장한다. 줄거리는 이렇다. 평균 수명이 늘면서 연금은 바닥을 드러낸다. 정부는 나라 곳간이 거덜날 지경이 되자 극단의 대책을 세운다. 연금 초과 수령자를 제거하기로 한 것. 주인공은 이런 일을 하는 ‘공무원 킬러’다. 한데 어느 날 그의 아내가 초과 수령자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주인공은 아내를 죽이려는 또 다른 킬러를 마주한다.

“당신 와이프가 올해 79, 그렇지? 연금이 저축해둔 돈 찾는 게 아닌 거 알잖아. 생산인구 소득을 거둬 비생산인구들에게 나눠주는 거야. …왜 안 죽어? 응? 늙었는데 왜 안 죽어! 그렇게 오래 살면 거북이지 그게 사람이야? 요즘 툭하면 100살이야. 늙으면 죽는 게 당연한데 대체 왜들 안 죽는 거야! 온갖 잡다한 병에 걸려 골골대면서도 살아있으니 마냥 기분 좋아? 기분 막 째져?”

소설이니 가능한 황당무계한 스토리다. 그러나 저 안엔 갈수록 첨예해지는 세대 갈등의 풍경이 희미하게 녹아 있다. 언젠가부터 젊은층과 중장년층 사이에 놓인 간극은 천지간처럼 느껴지곤 한다. 20, 30대는 고령화로 인한 사회적 문제와 재정 부담을 자신들이 걸머질까 걱정하고 있다. 해법은 어디에 있을까. ‘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에서 내세우는 처방전은 심플하다. 바로 은퇴 세대의 귀향이다. 어르신들한테 고향으로 돌아가 인생 이모작에 나서라는 거다. 저자가 이 같은 주문을 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도향촌으로 인생 이모작

‘베이비부머가…’를 소개하기 전, 저자가 규정한 베이비부머의 정의부터 살펴보자. 흔히 베이비붐 세대는 1955년부터 63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가리킨다.

하지만 저자는 74년까지를 베이비부머로 규정해놓았다. 대한민국 인구가 급증한 때가 55년부터 74년까지여서다. 한국인 가운데 무려 1685만명이 이 시기에 태어났다. 이들 가운데 베이비부머의 맏형 격인 55년생은 올해 각종 법령이 ‘노인’으로 규정하는 65세가 됐다. 베이비부머의 고령화가 본격화된 셈이다.

그렇다면 왜 저자는 베이비부머의 귀향을 주문할까. 가장 큰 이유는 “세대 간 직업 분업”과 “세대 간 공간 분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다. 젊은층에겐 새로운 지식을 갖고 창의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는 직종이 어울린다. 중장년층은 관리나 행정, 서비스 계통 업무를 잘 처리할 수 있다. 청년에게 맞춤한 직종이 적합한 공간은 도시다. 중장년층 상당수는 은퇴 이후 귀향을 희망한다. 만약 세대 간 직업 분업이 이뤄지고 공간 분리도 가능하다면 도시에서 일자리를 두고 다투는 세대 갈등은 희미해질 것이다. 베이비부머가 도시를 떠나면 부동산 가격은 내려간다. 집값 탓에 도시 외곽으로 밀려난 청년이 도시에 안착할 가능성이 커진다.

저자는 세대 간 직업 분업과 공간 분리야말로 “두 세대를 궁극적으로 ‘융합’하게 하는 상생의 전략”이라고 강조한다.

베이비부머의 이도향촌(離都向村)은 다른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요술봉이 될 수도 있다. 지방 소멸 문제를 떠올려보자. 많은 젊은이가 일자리 문제 탓에 고향을 떠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저마다 “청년을 끌어들이는 정책”을 펴는데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다. 저자는 “청년 인구를 끌어들여 지역을 살려야 한다는 건 희망 고문”이라고 지적한다. 만약 대한민국 인구의 3할을 차지하는 베이비부머가 지방으로 간다면 어떨까. 2018년 농촌경제연구원 설문에 따르면 50대의 42%가 귀향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베이비부머에겐 지방이 낯설지도 않다. 수도권에 사는 베이비부머 805만명 중 440만명이 지방 출신이다. 지방 출신 베이비부머의 10%만 귀향해도 전국적으로 귀향 인구가 110만명 발생한다.

그동안 역대 정부는 균형발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지방 살리기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지만 번번이 헛물만 켰다. 2013~2016년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거처를 옮긴 사람은 겨우 5만8000명 정도다. 저자는 온갖 균형발전 정책이 별무소용이었던 이유를 “사람이 아니라 지역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방으로 옮겨갈 사람이 없다면, 지역에 아무리 많은 투자를 한다고 해도 구멍 난 독에 물 붓기다. 그렇기에 이제는 방향을 바꿔서 실제로 지방으로 옮겨갈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마련해보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베이비부머가 귀향길에 오르려면

‘베이비부머가…’는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의 신작이다. 그는 전작인 ‘지방도시 살생부’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를 통해 지방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주문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전작 두 권이 한 권의 책을 분권한 느낌이었다면 신작은 조금 다른 차원에서 이 문제의 해법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책의 전반부가 베이비부머의 이도향촌이 왜 필요한지 역설한 내용이라면, 후반부에서는 이들이 귀향길에 놓인 허들을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는지 들려준다.

중장년층이 귀향을 망설이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①지방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가. ②사회적 관계를 새롭게 짤 수 있는가. ③열악한 지방의 의료 시스템을 어떻게 할 것인가. ①~③번 가운데 핵심은 아마도 ①번일 것이다. 저자는 고령 친화 서비스업이나 귀농 관련 일자리 등이 지방에 만들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귀향인을 위해 도시에 있는 주택을 담보로 연금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주택연금 제도를 활용하자거나, 도시에 집이 있는 상황에서 고향에 있는 주택을 사는 경우엔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주자는 제안도 실려 있다. 마 교수는 귀향하는 베이비부머의 경우 “자식에게 집을 증여할 때 부과되는 증여세를 감면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한다.

‘베이비부머가…’는 꼬투리를 잡으려면 끝도 없이 딴죽을 걸 수 있는 작품이다. 가령 마 교수가 제시한 지방의 의료 시스템 개선책(주치의 제도 도입 등)은 베이비부머의 호응을 얻기엔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저자 스스로 맺음말에 밝혔듯 여성 베이비부머가 남편에 비해 귀향을 원치 않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마 교수의 전작들이 그렇듯 ‘베이비부머가…’는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실마리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마 교수는 “미래는 우리가 어떤 상상을 하고, 어떤 제도를 만들어 나가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적어두었다.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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