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코로나19 이후가 중요하다

국민일보

[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코로나19 이후가 중요하다

의료·사회복지·행정·경제 전문가들이 중장기 대응체제 만들고 특별법도 제정해야

입력 2020-03-26 04:03

코로나19는 우리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바이러스다.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계열인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와는 양상이 다르다. 무증상·잠복기 상태에서도 감염력을 갖고 전파력이 매우 강하다. 급성 호흡기 감염병의 전형적 증상이 아닌 설사 구토 근육통 같은 증상이 나타나 진단을 어렵게 한다.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을 지낸 한 인사는 “감염병 교과서에 없는 의외와 변칙성을 많이 보여준다. 30년간 많은 바이러스를 봐 왔지만 솔직히 이런 건 처음”이라고 했다. 더구나 전문 치료제와 예방백신이 개발돼 있지 않다. 유행 장기화 우려가 나오면서 국민 불안과 걱정은 커질 수밖에 없다.

방역당국은 손씻기와 마스크 착용 같은 감염병 예방 수칙 지키기에서 나아가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생소한 방역책까지 들고 나왔다. 외출 자제, 집회·모임 금지, 휴교·휴업, 재택·유연근무…. 코로나19가 국민 일상을 바꿔놓고 있다. 경제에 미치는 충격파도 만만찮다. 그런 측면에서 코로나19는 방역당국과 의료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한 대학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최근 자신의 SNS에 “한국의 감염병 대응체계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고 썼다.

사실 2015년 메르스 사태 후 대한민국의 방역체계는 많이 개선됐다. 질병관리본부의 차관급 기관 격상, 국가지정격리병상 확충, 공항검역관 추가 확보, 의료기관의 감염관리 강화, 진단체계 지원 등이 이뤄졌다. 5년간의 이런 노력이 코로나19 초동방역에 밑거름이 된 건 분명하다. 신속 진단키트 보급과 승차 검진(드라이브스루), 자가진단 앱 같은 기발한 아이디어들은 해외 국가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다.

하지만 메르스 이후 지속적인 문제 제기에도 고쳐지지 않아 또다시 허점을 노출한 부분들은 아쉬움이 남는다. 여태껏 그런 것처럼,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다 고쳐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꼭 필요한 무기인 음압유지병상과 감염병전문병원, 각종 보호장구, 역학조사관, 감염병 전문가의 부족 등이 우선 꼽힌다. 특히 감염병전문병원의 경우 메르스 이후 전국 5개 권역에 설립을 약속했지만 국회 장벽에 막혀 반쪽에 그쳤다. 겨우 2곳에서 개소가 추진되는 과정에 코로나19가 터졌고 그 필요성을 절감해야 했다.

신종 감염병이 찾아올 때마다 시급히 요구되는 치료제와 예방백신 개발은 유행이 있을 때뿐, 그 이후 속도를 내지 못했다. 지속적인 연구·개발(R&D) 지원이 따라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버넌스 문제도 불거졌다. 방역 컨트롤타워인 질병관리본부장이 차관급으로 높아졌지만 위상에 맞는 권한과 지휘·통제권을 갖지 못해 초기 혼선을 불렀다. 마스크 착용과 관련해선 정부의 일관적이지 못한 메시지 전달로 인해 마스크 대란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의료계는 새로운 고민을 해야 한다. 코로나19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감기 증상만 보여도 ‘코로나19가 아닐까’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의료기관은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 환자들을 독립 공간에서 진료하거나 폐렴 환자들을 전부 1인실에 입원시키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쉽진 않다. 코로나19는 또 요양병원과 요양원, 정신폐쇄병동, 장애인보호시설, 콜센터 등 그간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삶의 현장들을 되돌아보게 했다. 단순히 감염병 전문가가 고민할 문제를 넘어 사회복지, 행정, 경제 전문가까지 머리를 맞대고 중장기적 대응시스템을 만들어야 함을 보여준다.

아울러 국민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처음 접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제대로 실천하고 체화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보다 더 센 놈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 신종 감염병으로 초래되는 이런 모든 상황을 대비해 이참에 ‘감염병 위기대응 특별법’을 만들 필요성도 제기된다. 물론 지금 당장은 급한 불을 끄는 데 힘을 모아야겠지만 코로나19 이후가 중요하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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