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잃어버릴 시간을 찾아서

국민일보

[바이블시론] 잃어버릴 시간을 찾아서

이대성 (연세대 교목실장)

입력 2020-03-27 04:02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의 주인공은 어느 날 마들렌 과자를 홍차에 적셔 한입 베어 물다가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그 기억이 단초가 돼 잊혔던 기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는데, 그것을 기록한 것이 총 7권, 3000쪽에 이르는 대작이 됐다. 과거의 기억을 되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현명한 것은 처음부터 시간을 잃어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것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그런 점에서 ‘잃어버릴 시간을 찾아서’라는 시(時)테크 프로젝트는 어렵지만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가 살아온 시간을 곰곰이 돌이켜 보면, 어떤 하루는 우리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서 나의 인격의 한 부분으로 체화돼 있고, 어떤 한 달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그 시간이 없었다 해도 아무 상관이 없는 경우가 있다. 나이를 단순하게 산술적으로 세지 않고, 의미를 가중해 센다면 나는 몇 살일까? 동갑이어도 신체나이는 다른 것처럼, 한 사람이 60년을 살았어도 그중 사라져도 되는 시간이 많이 있다면 그 사람은 60년을 충분히 살지 못한 셈이다. 반대로 같은 세월을 의미 충만하게 보냈다면 그 사람은 더 장수한 것이다. 성경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풍성하게 주러 오셨다고 말하는데, 풍성한 생명이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좋은 의미로 가득 채우는 삶이 아닐까.

우리가 잃어버리기 가장 쉬운 시간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시간이다. 늘 겪는 일들을 따분하고 지루하게 여기며, 매일 만나는 사람, 마시는 커피, 바라보는 가로수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고 산다. 그럴 때 그 많은 시간들은 잊혀 사라질 것이다. 잃어버릴 시간을 찾기 위해 우선 해야 할 일은 평범한 일상적 삶을 특별한 축복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상적 삶이 그 자체로 축복이라는 것을 오래전에 일깨워 준 작품이 있는데 손턴 와일더의 ‘우리 마을’이라는 희곡이다. 이 작품 속의 주인공 에밀리는 출산 중 죽게 되지만 간청이 받아들여져 다시 세상으로 내려가 딱 하루만 가족과 지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물론 에밀리가 죽음에서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에밀리는 너무 기뻐하며 가슴 벅찬 기대를 품고 세상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가족과 일일이 만나 마지막으로 꼭 나누고 싶은 대화를 하고, 영원히 기억에 남을 소중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막상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갔으나, 모두 바쁘다고 에밀리를 건성으로만 대한다.

결국 하늘나라로 돌아온 에밀리는 이렇게 푸념한다. “세상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볼 시간이 없는 것 같아요. 나는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어요. 모든 일상적인 일들은 시간과 함께 지나가고 아무도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있어요. 세상 사람 중에 삶이 무엇인지 알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한참 침묵이 흐른 후 무대 속의 전능자가 이렇게 대답한다. “글쎄, 성인들이나 시인들이나 알까? 대부분은 삶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우리 모두는 당연하게 여기던 일상적 사소함이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 삶의 한 부분이었는지를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에밀리와 같은 소중한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우리와 에밀리가 다른 점은 우리에게는 온전한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 시련의 시기가 지나고 일상의 삶이 돌아올 때 우리가 하루하루를 감사와 보람으로 가득 채우며 살 것인가, 아니면 잃어버린 시간으로 만들 것인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여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대성 (연세대 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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