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페어 플레이는 여전히, 이르다

국민일보

[혜윰노트] 페어 플레이는 여전히, 이르다

김윤관 (김윤관목가구공방 대표목수)

입력 2020-03-27 04:04

선거철이다. 팬데믹도 선거철의 법석을 없애지 못한다. 인간의 욕망은 질병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심장에 새겨진 가장 강렬한 욕망들이 분출되고 부딪치는 시기답게 이기의 민낯들이 최소한의 분장도 없이 드러난다. 한국사회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새삼, 정말 새삼 ‘페어플레이(fair play)’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앞뒤 좌우에서 들려오는 이 단어를 페어플레이의 굳은 의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오히려 ‘페어’하지 못한 사람들의 ‘플레이’를 위한 도구로 읽힌다.

페어플레이는 ‘성문화된 규칙의 준수’를 전제로 한다. 규칙의 준수는 플레이에 있어 ‘동등한 조건’을 의미한다. 권투선수는 링에 오를 때 글러브 안에 돌멩이를 넣어서는 안 된다. 규칙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어느 한 선수가 편법을 써서 글러브 안에 돌멩이를 넣은 채 링에 올라온 것이다. 편법이지만 불법은 아니기에 경기는 속행된다. 나머지 선수에게는 두 가지 길이 남아 있다. 규칙대로 글러브만으로 링에 서거나 아니면 상대와 똑같이 돌멩이를 글러브에 넣는 것이다.

‘도덕적’이라는 평가는 높은 명예다. 그래서 짐짓 점잖은 사람들은 이렇게 조언한다. ‘규칙이 그러하니 적어도 당신은 글러브만 끼어야 한다. 그래야 당신은 도덕적이며, 비로소 상대의 반칙을 비난할 자격도 얻는다’라고.

하지만 도덕적 자부심으로 가득한 이 조언이 놓치는 것이 있다. 돌멩이를 넣은 상대의 글러브에 맞아 이가 부러지고 입술이 터져 실신한 채 바닥에 쓰러진다면, 도덕적이라는 칭송을 알아들을 정신도, 상대를 비난할 이와 입술도 사라져 버린다는 사실이다. ‘페어’는커녕 ‘플레이’를 할 기회마저 사라져 버린다. 링은 ‘페어’하지 않았던 선수만이 남아 군림한다.

언제나처럼 도덕적 조언과 현실적 전망 앞에서 편이 갈라진다. 판단과 예측이 어려울 때는 이미 유사한 상황을 겪은 사람의 조언을 듣는 게 현명하다. ‘페어플레이’에 대한 조언에 가장 적합한 이는, ‘아Q정전’을 쓴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 루쉰(魯迅)이다.

루쉰은 1925년 발표한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는 글에서 ‘권술가(拳術家)’의 예를 들며 이렇게 말한다. “용감한 권술가는 넘어진 상대를 절대 때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모범으로 삼을 만하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적도 용감한 투사여야 한다는 전제다. 패배한 뒤, 부끄러워하고 뉘우치면서 다시 덤벼들지 않거나, 아니면 정정당당하게 복수를 하려는 자여야 한다는 점이다.”

루쉰의 말처럼 페어플레이는 ‘페어(fair)’를 약속한 ‘페어(pair)’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현실적으로 상대가 글러브 안에 돌멩이를 넣었다면 나 역시 글러브 안에 돌멩이를 넣고 링에 올라가는 것이 페어(공정함)다. 루쉰은 “그 사람의 도로써 그 사람의 몸을 다스려라”라고 조언한다. 이 유머러스한 작가는 “법률에는 태형이 없지만, 태형이 좋다고 하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곤장을 때려라”라는 부연설명을 붙인다. 상대의 뜻을 고려치 않고 오직 자신의 기준으로 대응하는 것 역시 페어플레이 정신에 어긋난다는 의미다. 심지어 플레이를 더욱 망가지게도 한다. 그래서 루쉰은 “페어플레이는 특히 폐단이 크다”라고 혀를 차기까지 한다.

선거철이다. 페어플레이 논란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페어할 의지가 전혀 없는 플레이어들이 여전히 플레이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어를 잃은 플레이어들을 단계적으로 링에서 몰아내고, 그 과정에서 ‘언페어(unfair)’에 물든 페어 플레이어마저 사라질 때 관객들은 페어한 플레이를 보게 될 것이다. 고정된 것들은 변질되고 악용된다. 사서(史書)의 수많은 페이지가 이를 기록하고 있다. 고착된 도덕심에 갇혀 링을 잃는다면, 미래는 난망하다. 페어플레이의 본래 의미와 효과에 대해 냉정히 생각해 볼 시기다.

일방적인 페어플레이는 여전히, 이르다.

김윤관 (김윤관목가구공방 대표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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