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추적기] “오늘은 좀 잤어요, 피해자 문자에 울컥했다”

국민일보

[n번방 추적기] “오늘은 좀 잤어요, 피해자 문자에 울컥했다”

본보 특별취재팀·불꽃 좌담회

입력 2020-03-28 00:30 수정 2020-03-28 00:30
n번방 사건을 세상에 알린 추적단 불꽃과 국민일보 특별취재팀 기자는 지난 26일 좌담회를 갖고 “가해자는 반드시 잡아서 강하게 처벌해야 하지만 피해자 보호와 지원도 정말 중요하다”며 “정부가 나서달라”고 말했다. 윤성호 기자

최근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국민일보의 ‘n번방 추적기’ 시리즈는 두명의 대학생으로부터 시작됐다. 추적단 불꽃. 이들은 지난해 7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조사하다 미성년자가 등장하는 거대한 성범죄 생태계를 발견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가학과 착취, 폭력의 기이한 세계였다. n번방의 존재를 처음 폭로한 불꽃은 이후 국민일보 특별취재팀과 함께 n번방에 잠입해 범행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박사’ 조주빈(박사방 운영자) 체포 후 검경의 대대적 검거작전이 시작되면서 사건이 변곡점을 맞은 지난 26일. 추적단 불꽃과 특별취재팀 기자가 만나 지난했던 n번방 추적 뒷이야기를 나눴다.

국민일보 보도 이후 불꽃이 국내외 언론과 한 인터뷰는 30건에 육박한다. 새벽 6시부터 밤 11시까지 하루 8건의 인터뷰를 소화한 날도 있었다. 취재 중 접한 피해의 세세한 부분을 되풀이해서 떠올리다보니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다. 이날도 불꽃은 대화를 나누며 자주 울먹였다. 감정이 격해져 말을 잇지 못하는 순간도 많았다. 그래도 결국 잡혔다는 사실이 이들을 웃게 했다.

불꽃은 “지난해 사건이 알려진 뒤 세상이 너무 조용해서 크게 낙심했다”며 “국민일보 기사 덕분에 이제라도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민일보는 관련 사건을 취재하며 심리적 충격과 트라우마를 겪은 불꽃과 특별취재팀에게 심리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신변보호를 위해 3명 모두 익명 보도한다. 추적단 불꽃의 두사람은 추적과 불꽃으로, 특별취재팀 기자는 기자로 표기했다.

박사가 잡히던 날

추적: 텔레그램 유력 용의자가 자해했다는 기사를 먼저 봤고, 나중에 박사라는 걸 알았다. 먼저 욕이 나왔다(웃음). 이어서 안도감이 밀려왔다. 실시간으로 피해 과정을 지켜봤으니까 박사에 대한 증오심은 극에 달한 상태였다.

기자: 와, 잡혔다, 이러면서 막 소리를 질렀다. 피해자들은 심리적으로 완전히 무너진 경우가 많다. 그들이 한순간이라도 빨리 소식을 듣고 해방감을 느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해자 신상공개는 필요하고, 피해자에게도 도움이 될거라 믿는다. 17세 피해자와 접촉한 적이 있는데 부모에게 알려지는 게 죽기보다 싫다고 하더라. 경찰이나 상담소에도 못가겠다면서 계속 연락이 왔다. 상담소에 문의를 해서 신원을 감추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줬다. 그 말을 전한 다음날 메시지가 왔다. ‘오랜만에 오늘은 좀 잘 잤어요’ 이런 내용이었다. 그 문자 보고 울컥했다.

추적: 박사 체포 후 대화방 반응에 화가 났다. 야동 하나 본 걸로 나라가 이 난리냐. 이러더라. 돈 주고 상품을 사서 썼는데 뭐가 문제냐는 말도 했다. 피해자에게 인격이 있다는 생각이 아예 없었다. 박사가 잡힌 다음날에는 박사 추모방이 생겼고, 거기에도 성착취물이 n번방 자료라는 이름으로 계속 공유됐다(추모방은 하루 만에 폭파됐다). 최근엔 박사 욕을 하더라. 박사 때문에 이 난리가 났다, 박사 죽어, 박사·n번방 언급 금지, 이러면서 선을 긋더라. 박사나 ‘갓갓’(n번방 창시자)은 정말 나쁜 사람들이지만 소위 관전자들도 다를 거 없다. 몹쓸 가해자들이다.

n번방을 만난 순간

불꽃: 지난해 7월 음란물을 주고받는 사이트 ‘AV스눕’을 보다가 ‘와치맨’(갓갓으로부터 n번방을 물려받은 인물로 지난해말 체포)이 올린 일종의 노예방 영상 후기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미성년자를 속여서 성착취물을 받아냈다는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거기서 텔레그램 고담방 링크를 봤다. 그 방 공지에 피해자 신상정보, 품평이 올라와 있더라. 고담방을 거쳐 n번방까지 들어가는데 5시간쯤 걸렸다. 성착취물을 처음 봤을 때 너무 놀랐다. 노트북을 확 닫아버렸다. 팔에 소름이 쫙 돋았다. 이게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맞나. 우리 둘이 서로 멍하니 쳐다봤다.

기자: n번방을 알리면 피해자에게 어떤 추가 피해가 생길까. 두 사람이 그런 고민을 많이 했다. 그 무렵 국민일보에 연락을 해왔고, 사건에 대해 알게 됐다. 의논 끝에 일단 경찰에 신고를 하자고 결정했다. 취재보다 가해자를 잡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추적: 국민일보 기사가 나가고 댓글 중에 ‘쟤네도 보려고 들어갔다가 얻어걸린 거네’ 이런 식의 비난이 있더라. 억울하고 분통 터진다. n번방을 추적한 지난 6개월이 우리에게는 너무 괴로운 시간이었는데.

성착취물이 남긴 상처들

추적: 지난달 박사가 운영하는 실시간방을 보다가 성인 여성이 예고편을 올린 걸 봤다. “새벽에 봐요, 많이 들어와주세요, 지금은 몇시 몇분 몇초, OOO입니다” 이런 식으로 박사가 시킨 대본을 읽더라. 그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때 생각을 하면, 아직도 심장이 아리고 뛰고. 뭐라고 말해야 할지. 가슴이 막 아프다.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유저들이 파생방에 와서 ‘OOO가 저런 것까지 하네, 이런 것도 하네, 지금 뭐하네’ 이러면서 놀더라. 둘이서 그걸 보면서 말문이 막혀서.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채증밖에 없었다. 다음날 경찰에 전화했는데 사건을 알고 있더라. 그날 온갖 생각을 했다.

기자: 가장 충격을 받았던 건 가족을 희롱한 게시물을 봤을 때였다. 어린애 사진이었다. 그걸 보고 난 뒤에는 텔레그램 안에 있는 사람들과 현실의 남성들, 그러니까 n번방에 분노하는 보통의 남성들하고 선이 잘 안그어지더라. 혹시 이 사람은? 이런 생각이 끊임 없이 들고 구분이 안되는 거다. 가해자들에게도 가족이 있을텐데, 평범한 아빠이자 아들, 남편일텐데 그런 일을 했다는 게 너무 놀라웠다.

추적: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하다보면 수위가 높고 낮은 걸 떠나서 무감각해지는 시기가 온다. 그러다가 어느날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사진을 보게 됐다. 그것도 친척 아이였다. 멍해졌다. 자기들끼리는 장려하고 환호하고. 충격이라는 말 말고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더 심각한 것도 많았지만 지금은 떠올리는 것조차 힘들다.

노예 만들기, n번방이 시초 아니다

불꽃: n번방의 노예 만들기 수법이 충격적으로 보이지만 최근 1,2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2015~2016년 혹은 그 이전에도 미성년자나 여성에게 심리적 불안과 공포를 조성하고 협박해서 자신의 몸을 찍게 만드는 그런 문화가 존재했다는 걸 확인했다. 그런 문화가 n번방, 박사방으로 진화한 거다.

추적: 예전에 아이디 ‘XX튀김’이라는 유저가 자신의 성관계 영상을 올리면서 본인 아이디를 휴대전화 화면에 크게 띄워서 그걸 상대 여성의 몸 위에 올린 뒤 인증샷을 찍었다. 내 거다, 내 마음대로 한다, 일종의 과시인 거다. 특이한 영상을 올릴수록 남성 커뮤니티 내부에서 권력을 얻는 구조다. 그걸 위해 여성에게 강요든, 협박이든 하는 문화가 퍼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나도 피해자가 될거라는 공포

추적: n번방을 추적하면서 우리 신상이 언제든지 털릴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피해자가 될거라는 공포도 있다. 모니터링 하면서 우리 학교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순간 피해자가 내가 아니라는 사실에 너무 안도감이 들었고, 안도했다는 이유로 죄책감에 시달렸다. 미안함에 더욱 열심히 감시했는지도 모르겠다.

기자: 보도 전날 가족들 SNS를 모두 비공개로 돌렸다. 신상이 폭로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있었다. 지인능욕방에 내 사진이 올라왔는지 확인해보는 사이트에 들어가본 적도 있다. 내 이름을 적어넣고는 떨려서 ‘엔터’를 못 치겠더라. 다행히 없었다.

불꽃: 취재를 시작한 뒤 ‘나갈 때 장롱문을 열고 나갔는데 왜 닫혀있지?’ 의심이 들어서 소동을 피운 적이 있었다. 공중화장실에서는 버려진 종이컵만 봐도 불안해진다. 카메라가 숨겨져 있을까봐.

추적: 지인 중에 가해자를 확인했었다. 주위에 가해자도, 피해자도 다 있었던 거다. 텔레그램 같은 경우 내 휴대전화 연락처에 있는 사람이 텔레그램에 가입하면 이름이 뜬다. 아는 남성이 뜨길래 설마, 했다. 그리고 텔레그램방 목록을 보니 그 사람이 있더라. 엄청 고민했다. 전화해서 욕을 해줄까도 생각했다. 그냥 연락을 끊었다.

박사, 박사, 박사 얘기뿐

기자: 텔레그램 성착취 법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분했다. 개정안에는 ‘딥페이크’ 처벌 관련 조항만 포함됐다. 딥페이크란 특정인 얼굴 등을 합성한 편집물로 텔레그램 성범죄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법은 제대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

추적: 국회의원들이 성폭력처벌특례법 개정안을 논의하면서 일기장에 쓴 것까지 처벌하나, 상상까지 처벌하면 어떻게 하냐, 이런 말들을 했더라. n번방 사건이 무엇인지 이해조차 못한 거다. 한 나라의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정말 아무 말이나 내뱉는다. 공부는 하고 입을 열면 좋겠다.

불꽃: 가해자 얘기는 그만하고 피해자에 대해 말하자. 피해자 보호가 필요하다고 대통령도 말하고, 언론도 외쳐주면 좋겠다.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자가 어린 경우가 많고 피해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는 걸 극도로 두려워한다. 그래서 어른들 도움을 받기보다 혼자 해결하려고 하다가 더 큰 피해가 생긴다.

추적: 박사가 누구이고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 그런 건 그만 쓰고 언론은 피해자들이 어디서, 어떻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달라. 피해자 보호 및 재발 방지책도 절실하다. 정부가 빨리 나서주면 좋겠다.

특별취재팀 onlinnew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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