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10만원’을 내가 받아도 될까

국민일보

[가리사니] ‘10만원’을 내가 받아도 될까

정현수 사회부 기자

입력 2020-03-30 04:01

휴대전화가 울려서 봤더니 배달 플랫폼 업체에서 온 카카오톡 메시지다. 올해 초 배달원을 취재하면서 ‘직접 체험해 보면 더 나을까’ 하는 마음에 프리랜서 배달원으로 가입했었다. 아직 탈퇴하지 않아 가끔 운행수칙이나 그날의 할증금액 같은 공지사항이 날아온다.

무심결에 배달원용 애플리케이션을 켜 봤다. 앱에선 그날그날 책정된 배달 건당 수수료를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사는 지역 건당 배달 수수료는 4000원. 분명 두 달 전 취재할 때만 해도 건당 1만5000원까지 받을 수 있었는데, 3분의 1로 낮아졌다.

주된 이유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때문일 것이다. 혹시 다른 이유가 있을까 싶어 연락해본 배달원은 “요즘 장사도 안되고 일 못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임시로 배달일을 하러 들어온 사람들이 넘쳐난다”고 했다. 일하겠다는 사람이 많아지니 노동의 단가가 떨어지는 당연한 이치다. 그 떨어진 단가라도 아쉬운 사람들이 하루가 멀다고 늘어간다.

온 세상이 방역을 위해 ‘물리적 거리두기’를 강조하고 있지만, 당장 생계를 위해 다른 사람과 잦은 접촉도 무릅써야 하는 이들이 있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던 서울 콜센터의 직원은 “언니, 우리 사무실에서는 누구 한 사람만 코로나19에 걸렸다 하면 금방 다 퍼질 것 같지 않아?” 걱정하면서도 고등학교 책상만 한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직장으로 매일 향했다. 사람으로 빽빽한 지하철을, 버스를 타고서. 그저 쾌적하지 않은 정도라 여겼던 일터는 역병이 창궐하자 ‘일하기 위험한 장소’가 돼 버렸다.

걱정스러운 건 그렇게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다. 코로나19의 확산을 지연시키기 위해선 물리적 거리두기 외엔 딱히 수가 없다. 서로 닿기를 자제해야 하니 식당에도 상가에도 손님이 없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다 보니 원료를 수입해 제품을 수출하는 공장에도 일감이 떨어진다. 거기서 일하는 근로자든 영세업체 사장이든 생계유지 그 자체가 당면과제가 됐다. 그렇게 바이러스는 기어코 우리 사회의 가장 약했던 고리들을 먼저 끊어버리고 있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 오래갈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기자들의 경제전망 질문에 항상 친절하게 답해주던 한 전문가는 “지금은 경제학자들한테 물어볼 게 아니라 의사들에게 물어보는 게 낫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방역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남은 건 치료제든 백신이든 코로나19와 싸울 무기가 개발될 때까지 버티는 일이다. 그간 우리가 꼬박꼬박 낸 세금 중 일부는 이런 사태를 대비한 보험이기도 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 돈을 당장 무너져 내리는 생계를 부여잡는 데 급급한 이들에게 투입하는 게 당연할 테다.

그래서 경기도가 재난기본소득 10만원을 모든 경기도민에게 지급하겠다는 뉴스 속보를 보며 “이걸 내가 받아도 되나”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10만원이 그리 절실하지 않은 나 같은 사람보다는 벌써 일상이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50만원을 몰아주는 편이 낫지 않은가 하는 이유 때문이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신속히 수당을 지급해 침체되는 경기를 살려보려는 지자체의 의지를 깎아내리자는 건 아니다. 대상자를 선별하는 데 더 많은 행정비용과 시간이 든다는 반론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꽤 촘촘한 한국의 복지전달체계를 고려하면 조금 더 고민할 여지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쉬이 떨치기 힘들다.

취재차 의사들에게 전화를 걸 때마다 그들이 걱정했던 건 코로나19 그 자체보다 그로 인한 의료 시스템 ‘셧다운’이었다. “확진자 수가 갑작스레 늘어나 병실이 코로나19 환자로 가득 차게 되면 교통사고로 실려 온 사람이 치료를 못 받아 죽게 된다”는 얘기였다. 경증과 중증 환자를 나눠 그에 꼭 필요한 만큼의 의료자원이 투입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대응방식이 코로나19가 야기한 경제적 문제에도 적용돼야 하지 않을까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현수 사회부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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