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장요나 (25·끝) 날 통해 많은 분이 하나님과 만나 영생의 삶 누리길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장요나 (25·끝) 날 통해 많은 분이 하나님과 만나 영생의 삶 누리길

31년 전 구하지 못한 아이들에 한 맺혀 고난 감수하며 교회·병원 등 세워 사역

입력 2020-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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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라카미사랑의선교회 임원과 회원들이 지난해 10월 7일 서울 서초구 횃불선교회관에서 ‘베트남 선교 30주년 선교심포지엄’을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베트남선교를 한 지 31년이 지났으니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한 건 당연하다. 베트남에 처음 입국했을 땐 우리나라와 수교가 되지 않아 비자를 받기도 힘들었다. 입국하려면 제3국에서 비자를 받아야 했다. 공항엔 컴퓨터 복사기 엑스레이조차 없었다. 1969년 베트남전쟁 때 파병돼 군인으로 봤던, 우리나라보다 앞서있던 사이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40여년 전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1989년 말 베트남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68달러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3000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발전했다. 처음 베트남 하노이에 갔을 땐 한국인이 15명 있었는데, 지금은 7만6000명이 넘는다. 호찌민의 한국인은 16만명 이상이다.

교회가 폐쇄되고 기독교인이 대부분 숙청당했던 이 땅에서 놀라운 변화로 교회들이 세워지고 있다. 구원받은 영혼의 수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내 가슴에 자리 잡고 있는 가시가 있다. 베트남에 처음 왔을 때 갔던 하노이 라탄호텔 앞에서 1달러를 달라고 애걸하는 아이들이다. 내 눈에는 아직도 그 아이들의 모습이 선하다. 음식을 볼 때마다 사료처럼 여기는 것도 그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빵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전하지 못했다. 내 잘못으로 그들이 지옥에 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나는 매일 나무관 위에서 몸부림치며 회개 속에 살아간다.

그 아이들을 구원하지 못했다는 한이 내 마음에 맺혀 31년간 고난과 핍박을 감수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달려왔다. 교회가 없던 곳에 312개 교회를 신축했다. 이곳에선 32만여명이 구원을 받아 예배를 드리고 있다. 사역자 양성을 위해 세운 신학교에선 860여명이 졸업해 교회 개척에 나섰다. 열악한 지역에 병원 16개를 세워 6300여명에게 구순구개열 수술을 무료로 해주는 등 의료사역을 진행했다. 초등학교 2개와 유치원, 보육원도 세웠다. 베트남 정부로부터 NGO 비자를 받아 복지와 미션 사역을 병행할 수 있었던 것은 피 흘림의 대가를 치른 열매라고 본다.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마 10:9~10)

세상 사람들은 내가 어리석다고 하겠지만, 나는 많은 것을 가져보았던 지난날 식물인간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이 세상을 떠나면 지옥과 천국이 있음을 똑똑히 보았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내 인생을 드러내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언하기 위해서다. ‘장요나’라는 시청각 교재를 통해 많은 분이 하나님을 만나길 기도한다. 그분을 만나 영혼의 눈을 뜨고 생명을 사랑하며 영생을 누리는 삶을 살길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 홀로 모든 영광을 받으소서. 할렐루야!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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