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광희 (1) 톤즈에 희망의 교회 종소리 멀리 퍼져 나가길…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이광희 (1) 톤즈에 희망의 교회 종소리 멀리 퍼져 나가길…

월드비전 통해 배우 김혜자와 찾은 톤즈… ‘희망고 빌리지’ 만들어 재봉기술 가르쳐

입력 2020-04-06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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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 디자이너가 지난해 희망의망고나무 프로젝트 10년째를 맞아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지난해 10월 충청도의 한 창고. 나는 긴장이 감도는 표정으로 바닥에 묵직하게 놓인 종을 보고 있었다. 햇빛을 받으며 고운 자태를 드러낸 종. 힘껏 줄을 당기자 종이 앞뒤로 움직였다. 뎅, 뎅, 뎅…. 창고를 가득 채우는 종소리를 듣는 순간 ‘됐다’ 싶었다.

나는 40여년간 대한민국 오트 쿠튀르를 상징하는 패션 디자이너 이광희(68)로 불렸다. 이제는 사단법인 희망의망고나무(희망고) 대표, 아프리카 동북부의 남수단 톤즈에서 ‘마마 리(Mama Lee)’라 불리는 게 더 좋지만.

지난해 디자이너 40년, 희망고 10년을 맞아 올해는 안식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렇다고 마냥 쉴 생각은 없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지금 나는 창고에서 들었던 그 종소리를 톤즈에서 듣고 있을지 모르겠다. 지난해 톤즈에 한센인들을 위해 세운 교회에 바로 그 종을 달기 위해 지난 2월 출국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나와 톤즈의 인연은 2009년 시작됐다. 배우 김혜자 선생님과 함께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을 통해 톤즈를 찾았다. 건기에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는 걸 보면서, 망고나무를 심을 생각을 했다. 그러자 그 땅에서 ‘망고나무가 뿅뿅 솟아나는 그림’이 떠올랐다. 그런 내게 김 선생님은 “너는 참 신기하다”고 했다. 황무지에서 망고나무를 떠올리니 그럴 법도 했다.

생각을 현실로 옮겼다. 4만 그루의 망고나무를 심었고 자립을 위한 복합교육센터 ‘희망고 빌리지’를 만들었다. 2014년부터는 한센인 마을에 교회도 세웠다. 지난해 4월 교회 완공을 앞두고 톤즈를 다녀온 뒤 종이 떠올랐다. 어릴 적 새벽마다 교회에서 들리던 종소리, 그 소리는 사람들의 하루를 깨웠다. 1인당 국내총생산 275달러의 극빈국 남수단, 거기서도 가장 소외된 한센인들이 울리는 종소리가 시계 하나 없는 광야에 울려 퍼진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종 만드는 사람을 찾아 제작하는데 꼬박 4개월이 걸렸다. 지난해 10월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새겨 넣은 140㎏짜리 종이 완성됐다.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시작이었다. 종은 우간다에서 사업하는 분의 도움으로 컨테이너 한편에 실어 톤즈로 보냈다. 다음은 종탑. 종의 무게도 무게지만 칠 때마다 흔들리는 충격을 버텨야 하는데 그걸 만들 기술이 톤즈에는 없었다. 높이 8m의 종탑까지 만들어 보냈다.

이런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한국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왜 수단이냐는 핀잔부터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거라는 지적까지. 분명한 건 ‘가치를 보면 비용은 문제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내게 ‘왜 그런 어려운 길을 가냐’고 묻는다면 농담으로 답을 대신해 보려고 한다. “부모님 잘못 만나서 그런 것 같다”고.



이광희 디자이너 약력=이화여대 법정대학 졸업, 국제패션연구원 수료. 88서울올림픽 기념패션쇼 개최, 아시아패션진흥협회 선정 ‘올해의 아시아 디자이너’. 산업자원부 ‘신지식인상’, 대한민국 디자인 대상 ‘산업포장 대통령상’ 수상. 프랑스 파리 프레타포르테 ‘한복 특별전시회’ 참여. ‘희망의 망고나무’ 설립.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