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교인 등록카드 파쇄… 한 달간 교회 ‘쉼’

국민일보

[칼럼] 교인 등록카드 파쇄… 한 달간 교회 ‘쉼’

섬에서도 되는 목회 <12>

입력 2020-04-0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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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새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지난 1월 제주도 서귀포 안덕면 하멜기념비 앞에서 영광의 문 기도회를 개최한 뒤 기념촬영을 했다.

2014년은 제주에서 목회를 시작한 지 10년이 되는 해였다. 기도 시간에 주님께 ‘저 좀 쉬고 싶어요’라고 했다. 여름 한 달 동안 가족과 같이 안식월을 가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주님께선 “왜 너만 쉬니. 교회 일을 너 혼자 했니. 모든 성도가 함께 수고하고 함께 일하지 않았니” 하는 마음을 주셨다. 그러고 보니 정말 제주새예루살렘교회에서 내가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아내와 교회 리더, 성도들이 자원해서 하는 일이 더 많았다. 회개가 나왔다.

교회 전체가 안식월을 갖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았다. 안식월 기간을 어떻게 정할지, 어느 정도로 교회 사역을 멈춰야 할지, 그동안 필요한 행정과 재정적인 업무를 어찌할지 등등 여러 가지가 떠올랐다. 무엇보다 교회가 성장하기 시작했는데 한 달을 멈추면 어떻게 될까 하는 고민도 생겼다. 감사하게도 리더들이 동의해 주었다.

7월 둘째 주일이었다. 교회가 무엇인지, 성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을 나누려고 강단 위에 종이파쇄기를 가지고 올라갔다. 그리고 이렇게 선포했다. “저는 오늘 이 시간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주님의 몸 된 진리와 생명의 공동체이며, 또한 교인은 어떤 조직의 일원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사실을 나눴습니다. 그래서 8월 한 달을 안식하면서 저와 모든 성도가 함께 이 두 가지를 깊이 생각하고 9월에 다시 모이기를 제안합니다. 한 달 동안 다른 교회들을 섬겨 주시고 그 교회가 여러분에게 좋은 영적 공동체이면 그 교회의 성도로 등록해도 좋습니다. 9월에 다시 이 교회에 오는 이들은 그날을 새로 등록하는 날로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교인 등록카드를 한 장씩 파쇄기에 넣었다. 모두 놀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배 후 회의에서 ‘소그룹은 해도 되지 않느냐’ 등 많은 질문이 터져 나왔다. “아닙니다. 저도 안식하겠지만, 여러분도 정말 안식하기 바랍니다. 모든 예배, 모든 모임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교회에서 기도하는 건 자유입니다. 헌금도 한 달 동안 섬기는 교회에 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목회자의 제안에 따라 2014년 여름은 성경학교도, 수련회도, 전도여행도 없는 교회와 예배당이 됐다. 많은 성도가 처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고 목사님이 다른 교회로 청빙 받아 떠나려 한다는 의구심도 가졌다. 하지만 성도들은 훗날 자신들이 신앙생활에서 홀로, 혹은 가족과 함께 한 달을 지내며 예배드린 시간은 처음이었으며 쉼과 회복의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우리 가족은 미션홈을 운영하시는 집사님 도움으로 부산 해운대와 동백섬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한 달을 지냈다. 처음에는 한 달 동안 많은 책을 읽으며 새로운 목회의 계획을 세워 보리라 생각했지만, 다섯 식구가 함께 모여 먹고 자고 놀고 하는 한 달은 그런 삶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말 그대로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족들과 온전히 안식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달이 지나고 다시 모여 예배드리는 날. 한 가정을 제외하고는 모두 모였다. 그 한 가정은 안식월 전 이미 교회를 옮기기로 했던 이들이다. 다시 모인 주일예배는 감격스럽고 기쁘고 행복했다.

2012년 미국 풀러신학교의 선교 담당 전체 책임자가 제주에 왔을 때 일이다. 그분은 “지금 목사님의 최대 관심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에너지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사역이나 삶, 인생도 하나님께서 허락된 일종의 총량 에너지라고 생각해요. 이 에너지를 어디에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사용할지 최대 관심사입니다.” “그런 고민은 50대 후반 목사님들이 하는데 40대 초반 목사님이 한다니 흥미롭군요.” 나는 지금도 주님이 허락하신 목회와 삶을 어떻게 드려야 할지 묻고 있다.

고웅영 목사(제주새예루살렘교회)

정리=백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