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용 목사의 ‘팔복 설교’] 모세의 산 vs 팔복의 산

국민일보

[이수용 목사의 ‘팔복 설교’] 모세의 산 vs 팔복의 산

마태복음 4장 23~25절

입력 2020-04-08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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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의 산’은 상징적으로 ‘모세의 산’과 비교되는 산이다. 모세는 12지파 사람들을 이끌고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았다. 그 계명은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이였다. 하지만 인간이 이것을 온전히 지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로 인해 이 계명은 오랫동안 우리를 족쇄에 묶고, 절망과 좌절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모세의 산이다.

반면에 팔복의 산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고 산에 오르셔서 새 계명을 선포한 산이다. 그 계명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이다. 이 산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옭아매었던 율법의 족쇄에서 더 이상 노예가 되지 않고 풀려났음을 선언하셨다.

예전의 모세의 산은 백성들이 오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산을 밟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출 19:12) 그 이유로 모세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해줬다.

그러나 팔복의 산은 제자들이 올랐다. 그리고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직접 대면하여 말씀을 듣고 있다. 무슨 뜻인가. 이 말은 곧, 예전에 율법으로 인하여 죽음의 권세 아래 묶여있던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로 놓임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모세는 예수님의 그림자이다. 그는 예수님을 상징한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여 모세의 산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선포했듯이 이제 그 그림자의 실체가 되는 예수님이, ‘모세의 산’으로 상징되는 ‘팔복의 산’에서 제자들과 직접 대면하여 하나님의 새로운 법을 선포하고 있다.

시내산으로 상징되는 ‘율법의 저주’와 팔복으로 선포되는 ‘하나님이 은혜’, 이 한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서 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와 율법의 저주에서 놓임을 받는 복을 누리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산상수훈 팔복의 서막이다. 팔복은 이렇게 하면 복을 받게 된다는 크리스천의 행동 강령이 아니다. 이 팔복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성취된 율법의 완성이 선포되는 현장이며, 그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누리게 된 은혜의 시작이다.

더 놀라운 것이 있다. 그것은 지금 제자들은 이 놀라운 계명, 역사가 바뀌고, 세상이 바뀌고, 새 시대가 오고 있다는 엄청난 사실이 선포되고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앉아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에게 무언가 큰 것을 기대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는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일방적으로 하늘의 복을 선포한다. 그들의 생각과 노력과 의지와 아무런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한다.

그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역시 교회를 다니고, 예배를 드리며, 기도하지만 그다지 하나님에 대한 큰 기대가 없다. 이 팔복의 선언이 그렇게 큰 하나님의 사랑인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구원하셨다는 사실도 크게 마음에 없다. 단지 때가 되어, 시간이 되어 습관적으로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선포하신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인하여 이미 복을 받은 존재이고, 우리 인생의 복은 예수를 믿는 순간 시작되었음을 알려 주신다.

그것이 은혜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행위와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선포된다. 그것으로 우리는 구원에 이른다. 신자란,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포기할지라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아는 자이다. 우리는 이미 그 사랑의 품 안에 들어와 있다. 그 사실 하나를 온전히 깨닫는 자만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준비해 놓은 복을 누릴 수 있다.

이수용 미국 버지니아 한몸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