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코로나바이러스의 인문학

국민일보

[너섬情談] 코로나바이러스의 인문학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입력 2020-04-08 04:02

프랑스의 철학자 장뤽 낭시에 따르면 세계를 위기에 빠뜨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 삶의 모순과 한계를 확대해 보여주는 돋보기에 해당한다. 사람들이 격리되고, 도시가 폐쇄됐다. 학교가 문을 닫고, 사교가 멈추었다. 공연이 중단되고, 행사가 취소됐다. 국경이 단절되고, 경제가 무너졌다. 끔찍한 공황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 이 모든 것은 인류가 일찍이 경험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사태다.

당장은 치료제를 발견하고 백신을 개발하며 병의 확산을 억제하는 감염병의 물리학이나, 눈앞에 다가온 기업과 자영업의 부도를 막아줄 긴급 자금 지원 또는 생존을 위협받는 시민들 생계를 책임질 재난기본소득 같은 감염병의 통치술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감염병 사태를 일시적·우발적 위기로만 받아들이고, 이 사태가 인간 삶에 미치는 깊은 의미를 곱씹어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로부터 진정한 교훈을 얻지 못할 수 있다. 감염병의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다. 이 사태를 놓고 우리한테 무엇을 생각하도록 요구하는가.

무엇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 삶에 내재한 쾌락 원리와 현실 원리의 전면적 충돌을 드러낸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라는 현재의 생산·소비 시스템을 즐기려 한다면, 우리는 결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인간 욕망의 실현을 위해 인간이 박쥐·바이러스 생태계를 파괴하자마자 바이러스 역시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등 진화를 거듭하면서 인간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중이다. 이번 사태로 인해 지구 전체를 생각지 않는 경제는 인간 삶 자체를 먹어치우는 모순을 도저히 피할 수 없음이 명백해졌다.

아울러 돈놀이에 집중하는 신자유주의 정치경제 시스템이 이번 같은 실물 위기에 얼마나 무력한지가 폭로됐다. 서로 너무 긴밀하고 복잡하게 연결된 글로벌 분업망 자체가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재난의 통로였다. 또 생명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첨단 기술을 가지고도 스스로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마스크, 방호복 등을 생산할 수 없는 기이한 무능력은 지역생산의 가치를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만약 이 사태가 끔찍한 식량 위기로까지 이어진다면 글로벌 경제는 전면적 재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또한 인류 전체가 공동운명체임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머리로 알았지만 몸으로 체감한 적이 없다. 코로나바이러스는 한 사람의 감염이 곧 전 인류의 감염일 수 있음을 드러냈다. 감염에 대한 좋은 대응 수단이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사실은 오히려 인간의 완전한 사회성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우리는 연결돼 있다. 한 사람의 질병과 곤란을 방치하면 나중에는 모든 인간이 질병과 곤란에 빠진다. 수십만 명을 죽음에 몰아넣을 수 있는 집단면역을 운운하면서 노인과 병자가 죽도록 사실상 방치해 사회를 무너뜨린 유럽 여러 국가가 남긴 교훈이다. 또 의료보험 등 사회안전망을 확보하는 대신 총기 구매와 물건 사재기로 각자도생을 도모하는, 세계대전보다 더 많은 죽음을 가져올 수 있는 비극을 수용하라고 강변하는 미국의 무능력이 우리한테 가르쳐준 것이다. 약자의 고통을 직시하면서 관용을 베풀고 연대를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적은 피해로 큰 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미국의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현재 감염병 지역 내에서 근본적 불평등, 인종주의, 자본주의적 착취가 빠른 속도로 자신을 재생산하는 중”이라고 경고한다. 가령 재택근무 같은 사회적 격리도 불평등을 강화한다. 누군가는 안전하게 집에서 일하는데, 누군가는 위험을 무릅쓰고 일터로 갈 수밖에 없다. 택배노동 없는 재택은 상상할 수 없다. 바이러스는 평등하나 감염은 평등하지 않다. 또 재택 하는 이들은 직장도 지키고 수입도 보전할 수 있지만 현장을 잃으면 모든 것을 상실하는 이들이 더 많다. 바이러스는 평등하지만 이 때문에 부의 격차는 심해진다. 사회가 이를 망각한다면 인류의 공동운명성은 또다시 파괴되고 다음번 위기는 더욱 심각할 것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