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우 칼럼] 메르스의 선물

국민일보

[이흥우 칼럼] 메르스의 선물

입력 2020-04-08 04:01

감염병 겪은 한국과 대만
‘코로나 모범국’ 평가받는 이유
우연 아닌 땀과 경험의 결과
어느 한 나라 잘한다고
코로나 사태 해결되지 않아
국제사회 서둘러 해법 찾아야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의 기세가 매섭다. 7일 현재 전 세계 확진자는 130만명, 사망자는 7만명을 넘어섰다. 각각 775명, 52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스·메르스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 세계를 더욱 떨게 하는 건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 앞으로 사망자가 얼마나 늘어날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평소 우리가 생각했던 선진국의 개념을 순식간에 바꿔버렸다. 미국과 유럽 각국이 코로나19에 맥없이 뚫렸다. 폭증하는 환자에 의료시스템은 붕괴 직전이고, 봉쇄조치로 사회는 혼란과 공포에 빠졌다. 선진국의 척도로 여겨졌던 성숙한 시민의식도 나부터 살아야 한다는 본능에 무너져 내렸다. 우리가 그토록 닮고 싶어했던 선진국의 모습이 이런 건가 하는 의구심이 절로 드는 요즘이다. 미국과 유럽이 이 지경인데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대유행할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골이 오싹하다.

미국과 유럽은 초기대응에 실패해 화를 키웠다. 중국에서 환자가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는 동안에도 강 건너 불 보듯 했다. 후속 조치 또한 느슨하기 짝이 없었다. 반면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의 대응은 달랐다. 외신들이 한국과 함께 코로나19 대응의 모범국가로 꼽는 나라가 대만이다. 대만 인구는 2300만명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쯤이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진자는 355명, 사망자는 5명(지난 4일 기준)에 불과하다. 인구비를 감안해도 확진자가 1만명을 넘고, 사망자가 200명에 가까운 우리나라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

대만은 우리나라만큼 대중국 경제의존도가 높다. 그런데도 2월 초 중국인 입국을 막았다. 보수 진영에서 “중국인 입국을 막았다면 국내 코로나 피해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논리의 근거다. 또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 사흘 만에 마스크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마스크 구입 실명제도 실시했다. 마스크 5부제 등 현재 우리나라가 취하고 있는 마스크 관련 조치 대부분이 대만에서 벤치마킹한 것들이다.

대만은 사스를, 우리나라는 메르스를 경험한 공통점이 있다. 대만은 사스 사태 후 감염병 대책을 총괄하는 중앙전염병지휘센터(NHCC)를 출범시켰다. NHCC는 감염병 단계별로 124개 행동지침을 만들어 매년 보완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감염병 대책기구를 질병관리본부로 확대 개편했다. 지난 연말에는 방역전문가로 구성된 ‘원인불명 감염병 진단분석 태스크포스’를 꾸려 도상훈련을 했다. 그리고 때마침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 한국과 대만이 ‘코로나 모범국’이란 호평을 듣는 게 결코 우연이 아니다. 메르스 사태, 사스 사태의 교훈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 결과다.

미국과 유럽은 사스, 메르스 경험이 없다. 그래서 처음엔 우리 방역 당국이 증상자를 관찰, 추적, 격리하고 일반인에게까지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서구에서 범죄자가 아닌 일반인을 추적, 관찰하는 건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로 여겼다. ‘히스테릭한 파시스트 보건국가’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마스크에 대한 시각도 동양과 다르다. 서양에서 마스크는 대개 의료진과 환자만 쓴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미국과 유럽에서 마스크 쓴 동양인이 종종 혐오의 대상이 된 이유다.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한국의 대응방식이 세계의 뉴노멀이 되고 있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6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적극적인 검사와 진단, 확진자 동선 추적 등 한국의 포괄적 전략이 주효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다음 달 예정된 세계보건총회 기조연설을 부탁했다. ‘마스크 착용이 코로나19 전파를 막는 데 유용하다는 증거가 없다’고 했던 WHO 입장도 ‘다른 조치와 결합하면 효과가 있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메르스 경험을 통해 과학적으로 입증된 마스크의 효용성을 이제야 WHO가 인정한 게 아쉽다.

외국인 입국금지는 여전한 논쟁거리다. 대만은 신속한 중국인 입국 봉쇄를 통해 바이러스 통제에 성공한 반면 우리나라는 그러지 않고도 일정한 선에서 억제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방역적 측면에선 봉쇄가 최선이다. 그렇다고 무한정 틀어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코로나 사태는 어느 한 나라가 잘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국제사회가 어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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