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풍경화] 대한민국의 편의점 이용백서

국민일보

[편의점 풍경화] 대한민국의 편의점 이용백서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입력 2020-04-18 04:04

왈왈왈, 강아지에게 보험을 들어준다니! ‘애견보험’이라는 용어마저 귀에 닿기 어색한데 그 희한한 보험을 편의점에서 가입할 수 있다니! “이달부터 우리 편의점에서 애견보험 상품 판매를 시작합니다”라고 했을 때 ‘도대체 내 직업은 몇 개가 되는 건가?’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편의점에서 택배 서비스를 취급하게 된 지는 이미 오래됐다. 편의점에서 전기 가스 수도요금을 낼 수 있다는 사실도 이젠 상식에 가깝다. 편의점에서 치킨을 팔고, 편의점에서 어묵, 닭꼬치, 군고구마도 판다. 1000원짜리 편의점 커피는 알뜰한 소비자들 사이에 ‘가성비’의 대명사로 꼽힌다. 편의점에서 휴대폰을 개통할 수 있고, 편의점에서 하이패스 단말기, 감기약, 소화제는 물론 자궁경부암 진단키트까지 구입할 수 있다. 편의점에서 마카롱과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팔고, 편육, 홍어회, 참치회, 양꼬치, 삼겹살까지 판다. 전자레인지에 돌려 바로 먹을 수 있는 수제비와 잔치국수도 편의점 냉장고에서 언제나 당신을 기다린다.

도대체 편의점에서 살 수 없는 것이 있을까? 편의점에서 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택배 대리점, 공과금 수납처, 치킨집 아저씨, 군고구마 노점상, 빵가게 주인장, 분식점 조리사에 덧붙여 이제는 보험판매업까지…. 형태를 헤아리자면 내 직업은 스무 개, 아니 서른 개쯤 될까?

코로나19로 배달업종은 상대적 호황을 누리고 있는 요즈음, ‘배달 편의점’도 각광받는다. 스마트폰 앱으로 주문하면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거의 모든 상품을 집에서 받아볼 수 있다는 사실!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손님, 이 제품은 1+1입니다. 하나 더 가져가세요” 하고 말씀드리면 “나는 그냥 하나만 원하는데…” 하면서 난처한 표정을 짓는 손님들이 계시는데, 편의점에 보관해 두었다가 나중에 찾아가시면 된다. 이 사실을 모르는 손님들도 아직 숱하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 편의점 이용백서’ 같은 책을 한번 써볼까 하는 출판 의욕마저 샘솟는다.

편의점 매출은 겨울이 최악, 여름에 최고를 이룬다. 밤보다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면 서서히 매출이 올라가 8월쯤 절정에 닿는다. 그러나 지금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올해처럼 이 말을 실감하는 시절도 없는 것 같다. 매출은 벌써 두 달째 바닥을 기어 다니고, 손님에게 눈으로만 인사를 건네는 나날에도 이젠 솔직히 지쳐가는 무채색 계절이다. 그러나 엊그제 화단에 심은 맨드라미 씨앗이 금세 새싹을 틔우며 파릇한 얼굴을 내미는 것처럼, 이 우울한 일상도 언젠가는 활짝 기지개를 켜며 따뜻한 아침을 맞으리라 믿는다.

삼겹살 젤리가 도착했다. 들어오는 족족 팔려나가는 인기 상품이라 예약을 받아놓을 정도가 됐는데, “아저씨, 삼겹살 젤리 왔어요?” 하면서 마침 예약 손님이 찾아왔다. “와, 생긴 것이 정말 삼겹살과 꼭 닮았네요!” 한쪽 눈을 싱긋 깜박이며, “그렇다고 구워 먹진 마세요”, 농담을 건넨다. 마스크 너머 웃음이 보인다. 웃음 너머 빼꼼 봄이 열린다.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포토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