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사] 모든 게 ‘원격’… 코로나 키즈, 다른 세상에 산다

국민일보

[이슈&탐사] 모든 게 ‘원격’… 코로나 키즈, 다른 세상에 산다

[코로나19가 바꿀 미래] ① 비접촉사회가 온다

입력 2020-04-21 04:01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최모(7)군은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됐지만 아직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친구들과 함께 태권도 학원에 가는 일도 중단했다. 어쩌다 외출할 때 최군의 부모는 반드시 마스크를 쓰게 한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이전 세대와 다른 삶을 사는 최군을 ‘코로나 키즈’라고 부를 수 있다. 코로나 키즈는 어떤 미래에서 살게 될까. 여러 전문가의 예상을 기반으로 최군의 20년 후를 그려봤다.

# 2040년 4월 21일, 27세 최씨는 취직 후 첫 출근길 마스크부터 집어든다. 어릴 적부터 미세먼지 탓에 착용해온 마스크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필수품이 됐다. 화창한 날에도 마스크를 쓰는 건 사회적 에티켓이다. 그가 입사한 기업은 수천 명이 소속한 대기업 계열사지만 사무실은 건물 세 개 층뿐이다. 임직원 대다수가 재택근무를 한다. 그는 입사 시험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화상 면접을 봤다. 교육을 담당하는 선배는 신입사원들에게 “너희를 가르치려고 오랜만에 출근했다”며 “일주일 동안 기초적인 사항만 배우면 재택근무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도 재택근무가 더 편하다. 20년 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한 이후 온라인 의사소통이 일상화됐다. 학교 수업은 감염병 위기경보가 발령될 때마다 온라인 방식으로 전환됐다. 최씨는 감기 기운이 있으면 병원에 가지 않고 스마트폰 앱으로 원격 진료를 예약한다. 화상으로 의사에게 증상을 이야기하면 처방된 약이 그가 있는 곳으로 배달된다. 그는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다. 해외여행이 금지된 건 아니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여러 나라가 건강 상태가 적힌 서류를 요구한다. 낯선 곳에 가면 어떤 감염병 위험이 있을지 몰라 본인도 해외여행 욕구를 참고 있다.

이런 미래 시나리오는 현실이 될까.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세계적 미래학자인 짐 데이토 하와이대 명예교수는 “지금 당신이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 미래의 모든 것이 틀릴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서울 도곡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열린 세미나에 원격 화상으로 참여해서다. 그런데도 미래를 그려보는 이유는 코로나19가 가져올 세상의 변화가 엄청날 수 있어서다. 미흡하더라도 시나리오를 마련해놔야 변화에 대비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원격의 시대’를 앞당길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인류가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비대면 생활’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강제하고 있다. 교육과 의료, 직장 등 실생활 각 분야에서 디지털 기술에 기반을 둔 새로운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온라인 교육은 전 세계가 맞닥뜨린 문제다. 20일 유네스코(UNESCO)에 따르면 190여개 나라에서 학교가 폐쇄돼 15억7000만명이 등교를 못 하고 있다. 각 나라 정부는 교육 공백에 대응해 온라인 강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영국과 이탈리아는 지난달부터 ‘구글 클래스룸’이나 ‘마이크로소프트 팀즈’ 같은 온라인 교육 플랫폼을 통해 수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확산이 수그러든 이후에도 온라인 교육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감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상황에서는 온라인 수업이 교실 수업과 병행되거나 일정 부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지금 학생들은 스마트 기기와 소셜미디어를 통한 상호작용이 익숙해 온라인 교실에 쉽게 적응할 것”이라며 “공교육의 시공간적 유연화가 이뤄질 기회”라고 말했다.

수천 년간 대면 진료를 원칙으로 하던 의료 분야에서도 원격진료가 현실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의사단체의 반대로 원격진료가 도입되지 못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24일부터 원격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이용자는 증가 추세다. 원격진료 앱 개발 업체인 메디히어에 따르면 지금까지 원격진료 사례는 3000건이 넘는다. 김기환 메디히어 대표는 “코로나19에 감염될까 두려워 병원 방문을 꺼리는 20, 30대 직장인이나 아동·청소년이 주요 환자군”이라고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기사에서 “원격진료는 팬데믹이 가져다준 뜻밖의 이득”이라며 “코로나19가 종식돼도 원격진료산업은 계속 성장해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택근무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번역 대행 업체에 다니는 이채현(30·여)씨는 사무실에는 1주일에 이틀만 출근하고 나머지 사흘은 집에서 일하고 있다. 회사는 지난달 한시적으로 도입한 재택근무를 상시화하기로 했다. 이씨는 집에서도 필요하면 언제든 동료와 화상으로 회의하고 클라우드를 통해 자료를 공유한다. 그는 “출퇴근시간을 아끼고 건강한 집밥을 먹을 수 있어 좋다. 직원들도 다들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원격 교육·근무·진료의 확대가 부동산 시장에 파급효과를 낼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윤기영 FnS컨설팅 대표는 “원격근무는 도심에 거주할 필요성을 줄인다. 감염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방 중소도시에 대한 선호가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쇼핑부터 화폐까지, 빨라지는 디지털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예상되는 또 다른 트렌드는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컴퍼니가 지난달 말 국내 소비자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코로나19 발생 이후 약 10%의 소비자는 일반 상점에서 온라인 사이트로 식료품 구매처를 바꿨다. 이 가운데 4분의 1은 다시 오프라인 상점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답했다. 미국 유통 업체 발라시스 조사에서도 미국 소비자 42%가 온라인 쇼핑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 통화 당국은 현금 대신 디지털 화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대비 중이다. 영국과 프랑스 등지에서는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 사회적 거리두기, 영업점 봉쇄의 영향으로 현금 사용이 감소하는 추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달 초 현금에 바이러스가 묻을 가능성에 대비해 현금을 쓰지 말라고 권고했다. 한국은행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스마트폰 등을 활용한 비대면 결제가 전 세계적으로 크게 늘었다”며 “디지털 화폐 발행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웨덴과 중국은 디지털 화폐 발행 준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미국과 일본도 관련 연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대기업들은 업무 환경을 디지털로 재정비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SK그룹은 비대면 회의와 유연근무 확대에 중심을 둔 ‘스마트워크’를 지난 1일부터 두 달간 실시하는 중이다. LS그룹은 코로나19를 계기로 2025년까지 클라우드 기반 업무체계를 구축하는 데 수백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원격·디지털 사회의 예상되는 그늘은

비대면 접촉이 일상화되는 사회는 부작용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택근무 증가는 효율 측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지만 노동시장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근무 시간과 장소가 유연해지면 고용의 유연성도 강화될 수 있다. 비정규직 일자리가 늘어나고, 쉬운 해고가 가능한 곳이 포스트 코로나 사회일 수 있다는 얘기다.

재택근무 확산은 기업의 보안사고 증가를 부를 수 있다. SK인포섹은 올 1분기 감지한 사이버 공격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 증가했다고 최근 밝혔다. 회사 내부보다 보안체계가 허술한 재택근무 환경을 노린 해킹이 많았다고 한다.

사이버 공간에서 새로운 유형의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도 크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지난달 보도자료를 내고 “휴교 중인 아이들을 상대로 성착취 범죄가 증가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경고했다. 국내의 ‘텔레그램 n번방’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면 가정폭력이 증가할 수 있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달 이동 제한 조치 이후 가정폭력이 30% 이상 늘었다고 발표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최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전 세계 모든 정부가 팬데믹 상황에 대처할 때 여성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비즈니스가 증가하면 독과점 논란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수수료 인상 문제로 논란이 됐던 ‘배달의민족’ 사례와 같은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얘기다. 윤기영 FnS컨설팅 대표는 “디지털 플랫폼이 정보의 복잡성을 단순화하는 역할을 하므로 플랫폼 기업 자체를 규제하는 것은 더 큰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면서 “시장의 역할을 하는 디지털 플랫폼을 공공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시도가 늘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바꿀 미래]
[이슈&탐사] “감염병 가짜뉴스로 국가 간 분쟁 일어날 수 있다”

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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