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사] 멈춰선 학원버스… “일거리 잃는 게 더 무섭다”

국민일보

[이슈&탐사] 멈춰선 학원버스… “일거리 잃는 게 더 무섭다”

[코로나19가 바꿀 미래] ②더 혹독한 양극화가 온다

입력 2020-04-22 04:00

세상은 이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여겨진다. 얼굴을 직접 맞대지 않는 소통·거래가 늘고 상품·서비스의 디지털화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가난한 사람과 약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해 이들과 부자들과의 경제적·사회적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30년 넘게 학원 셔틀버스를 운전해온 기사 김모(71)씨. 코로나19로 학원이 문을 닫으면서 김씨의 12인승 승합차는 멈춰 있다. 평소 그는 오전 6시 집을 나서 오후 10시까지 일을 한다. 그의 승합차는 유치원 통학 차량이 됐다가 학원 등·하원 차량이 된다. 오후 4시30분까지 유치원 일을 마치면 서울 강북의 한 학원가로 이동해 오후 10시까지 차를 몬다. 그래야 한 달 200만원을 손에 쥘 수 있다. 이 돈으로 차량 할부비 30만원과 기름값, 자동차 보험료, 월세를 내고 아내와 함께 생활한다. 김씨는 21일 “코로나 감염 위험보다 당장 먹고살 돈이 없는 게 더 무섭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30만명에 이르는 셔틀버스 운전기사들은 정부가 긴급 생활자금 지원 대상으로 지목한 특수고용 노동자에 포함되지 않아 생계비 대출 지원이 막혀 있는 상태다.

코로나19 사태가 내일 종식되더라도 돌아갈 일터가 없는 사람들도 있다. 부산의 한 조선업 관련 앵글 제조 공장에서 일한 변모(52)씨는 다니던 직장이 이미 폐업했다. 그는 “경기가 안 좋아서 회사가 겨우 버티고 있었는데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문을 닫았다”면서 “옛 동료 중에는 공사현장 일용직 일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김씨와 변씨가 힘겨운 현실을 버텨내면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일흔이 넘은 김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셔틀버스 운전뿐이다. 그는 “5월 초에는 다시 일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장담할 수 없대요. 그럼 그때는 정말 차를 팔아야 해요. 나한테 차는 전부인데, 차를 팔아야 한다면 모든 게 끝나는 거죠”라며 울먹였다.

학원버스 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해온 김모(71)씨가 지난 14일 서울 은평구 전국셔틀버스노동조합에 주차된 차량의 문을 열고 있다. 김씨는 “코로나19로 한 달 넘게 일을 못해 수입이 0원”이라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바이러스는 모두에게 똑같이 위험하지만 모두가 이 사태를 비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면서 많은 대기업이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비대면 관련 산업이 급부상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기회가 생긴 산업 영역이 있는 것이다. 새로운 근무 방식을 실험해보는 곳도 있다. 엔씨소프트는 이달 주 4일 근무제를 시행 중이다. 주 5일 중 하루는 일하지 않아도 급여를 지급한다. 대기업들은 유연근무, 출퇴근 자율제 등을 통해 효율적인 근무 방식을 찾아가며 바뀌는 현실에 적응해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 격차는 더 극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불황이 심각해지면 정부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자금 지원을 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에서 국가는 주요 산업에 자금 지원을 했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 위기) 국면을 타개하려면 주력 산업이 생존해 있어야 하는데 기업들이 과도기를 잘 넘어갈 수 있도록 정부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부문 일자리 역시 위기 상황에서 공공서비스 수요가 늘어나면서 민간에 비해 타격이 덜한 편이다.


재택근무 증가와 산업의 디지털화는 자영업자의 폐업으로 이어지고, 이는 중산층을 감소시켜 사회 양극화를 더욱 심하게 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윤기영 FnS 컨설팅 대표는 “기본적으로 인구 대비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상황에서 온라인 쇼핑과 배달 대행 활성화로 사람들이 오프라인 매장을 찾지 않게 되면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더 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의 원격 근무가 늘어나면 사무실이 밀집 지역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큰데 이 경우 주변 상가가 타격을 받아 자영업 폐업 추세가 더 강화될 수 있다”면서 “자영업자들이 바뀐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시간을 마련해주는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대별로는 디지털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가 직장에서의 생존을 좌우할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디지털화 속도는 상상 이상으로 빠를 수 있다. 윤 소장은 “디지털화가 점점 더 진행되면 이 분야의 소양과 역량이 부족한 X세대(1970년대) 이상 세대는 경쟁력 부족으로 회사에서 퇴직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양극화의 골이 깊어지면 기본소득 도입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긴급재난지원금은 일회성이지만 감염병의 위협이 일상화되면 기본소득이 상시적으로 지급될 수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굶어 죽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재난 소득을 투입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면 코로나19로 인한 위험이 구조적 양극화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본소득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시점에서는 이를 둘러싼 논쟁도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긴급재난지원금을 놓고 우리 사회가 겪는 것처럼 ‘100% 보편적 지원이냐 선별 지원이냐’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기본소득 도입 대신 기존 사회복지 제도를 강화하는 게 소외 계층에 대한 실질적 지원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윤형중 LAB2050 정책팀장은 “사회복지 지출을 끌어올리면서 동시에 세금 제도와 결합한 기본소득을 병행하면 불평등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 전문가 전망 ▒▒▒

서울대 주병기 교수
“급속한 첨단화·자동화로 이어져 고용 불안정”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는 경제적 양극화를 더 심화시킬 수 있다. 경제위기는 일반적으로 고용이 불안정하고 저축, 자산, 보험 등 위기에 대비할 여력이 없는 저소득층에 더 큰 피해를 준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공적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지지 않은 나라에서 이런 경향이 더 뚜렷하고 경제위기로 인한 양극화는 더 심할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코로나19 대유행이 전통적 소비와 생산 방식의 급속한 첨단화와 자동화로 이어지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 고용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비하기 어렵고 이는 다시 계층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서울대 박상인 교수
“서비스업 불평등 심화… 구조적 문제 지속 예단 못해”
일시적으로 불평등이 심화하는 것은 확실하다. 일차적인 충격을 받는 곳이 자영업 중심의 서비스 업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소득이 상대적으로 더 낮은 영역이다. 이 영역에서 실직과 폐업, 소득 급감 현상이 일어나므로 사회 보장으로는 그 손실분을 메꿔주지 못한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하루아침에 바뀔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경기가 회복돼도 충격이 최소 1~2년은 갈 것이다. 다만 이런 불평등이 구조적인 문제가 돼 계속될 것이냐는 현재로서는 예단하기 어렵다. 아직 코로나19가 경제에 주는 충격이 어느 정도일지 모른다. 충격이 크면 구조적인 변화가 있을 수 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
“한계기업 무너져…최악 대비해야”
고용시장은 불황 국면에 들어갈 조짐이 있다. 여러 방책이 효과가 있을지 예측이 어렵다. 단기적으로는 항공, 숙박, 여행 등 분야에서 위기가 발생했다고 하면 (앞으로는) 제조업 등 중심부로 이동할 것이다. 대기업들은 현금이 있고 노사가 고통을 나누면 견뎌내겠지만 한계에 있는 기업들은 무너져 내릴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지금은 너무 힘드니까 전 국민에게 100만원이든 50만원이든 나눠줘야 하지만 2단계에서는 선별적인 복지 체계를 가동해야 한다. 시장에 맡겨두는 게 아니라 아래쪽을 튼튼하게 막을 방안을 짜야 한다. 국가가 가만히 있으면 격차는 더 심해지고 사회 분위기가 극단적으로 갈 수 있다.

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spring@kmib.co.kr

많이 본 기사

포토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