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경험의 맛

국민일보

[혜윰노트] 경험의 맛

홍인혜 시인·웹툰작가

입력 2020-05-01 04:02

코로나 시대를 맞아 비약적으로 업그레이드된 재주가 있다. 그것은 나의 요리 실력이다. 외출을 자제하며 외식이 줄었고 한 끼 두 끼 해먹으며 조금씩 익숙해지던 요리가 두어 달 만에 완전히 손에 붙었다. 이 변화가 놀라운 이유는 그동안 내 요리가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무얼 해도 갸우뚱한 맛이었고 모양새도 참담했다.

사실 이 초라한 요리 실력은 오랜 세월 나의 미스터리였다. 요리라는 것은 모두 레시피가 있기 마련이고, 이를 따르기만 하면 되는 행위였다. 말하자면 설명서가 있는 조립가구 같다고 해야 할까. 해야 할 미션이 번호표를 달고 나열돼 있고 차곡차곡 수행하기만 하면 완성품이 나와야 했다. 물론 세상엔 어려운 레시피도 많고 요리도 일정 부분 창의성을 발휘해야 함을 안다. 하지만 내가 도전한 음식들은 대개 단순했고, 정해진 동작을 수행하기만 하면 요리책 사진처럼 짜잔 완성돼야 했다. 그런데 내가 그걸 못 해내다니.

대체 왠지 싶었는데 근래 요리 실력이 다소 늘고 나서야 알았다. 그간 내가 어느 부분에서 실패했는지를 말이다. 그 원인은 서로 반대적인 두 성질 때문이었다. 겁이 너무 많았거나, 너무 겁이 없었거나. 모순적인 이야기 같다고? 다음의 사례를 보자.

우선 나는 요리지식이 전무했고 무지는 공포를 가져왔다. 만약 레시피에 황설탕이라고 나와 있는데 가진 게 백설탕뿐이라면, 요리를 포기하는 수준이었다. 설탕의 대체재가 물엿, 올리고당, 꿀, 나아가 각종 과일청일 수 있다는 사실도 당시엔 몰랐다. 그리고 이 겁 많은 초심자는 레시피의 문구를 맹목적으로 따른다. 레시피를 따르는 게 뭐가 문제냐고? 예를 들어 내가 ‘마늘을 볶다가 양파를 투하하라’는 문구를 봤다고 치자. 나는 마늘을 기름 두른 팬에 던져 넣고 양파를 썰기 시작한다. 하지만 칼질에 서툴러 양파는 사방으로 튀어나가고 급기야 난도질된 양파의 복수로 눈물까지 고이기 시작한다. 마늘은 황금색을 넘어 흙빛으로 변하고 있다. 이 경우 사실은 불을 끄고 차분히 양파를 마저 썰면 된다. 마늘은 넉넉한 인내심으로 나를 기다려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곧잘 마늘을 까맣게 태워먹으며 손은 손대로 다치곤 했다. 왜냐, 레시피 중간에 불을 꺼도 된다고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재밌는 점은 이 고지식한 요리사가 또 어떨 때는 기가 막힌 창의성과 반항심을 뽐낸다는 사실이다. 쿠키에 도전했을 때 주걱으로 긋듯이 가볍게 섞어주라는 말이 있었는데, 정성을 더한다며 수타면 장인처럼 사정없이 치댔다. 내 쿠키를 깨물어본 가족의 첫마디는 ‘창고에서 망치 갖고 와’였다. 글루텐이 과도하게 형성돼 벽돌처럼 단단했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양배추찜에 양상추를 사용한 적도 있고 담백한 생크림을 넣어야 하는 요리에 다디단 가당 크림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때의 생각은 ‘대충 비슷한 것 아니야?’였다. 쓰다 남긴 두부에 살짝 곰팡이가 피었는데 고민하다 찌개에 넣어버린 적도 있다. 그때 내가 떠올린 건 ‘외국에선 썩은 두부도 먹는다는데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동안 나의 패착은 이것이었다. 해야 할 일의 리스트는 명징했지만 어떤 것이 변주해도 되는 부분인지, 어떤 것이 꼭 따라야 할 룰인지 모른다는 것. 그 차이를 아는 능력은 바로 경험치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치라는 것은 책에도 인터넷에도 없었다. 오로지 몸으로 익히는 수밖에.

나는 오늘도 새로운 경험치를 쌓고 있다. 들기름 자리에 참기름을 넣으면 어떻게 되는지, 우유 대신 두유를 넣으면 어떻게 되는지, 양조식초 말고 사과식초를 넣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혀끝으로 익히고 있다. 때로는 별 차이 없고 때로는 더 낫고 때로는 끔찍하다. 이 시행착오들은 내 안에 장기 기억으로 차곡차곡 저장돼 하나의 능력으로 탄생할 것이다. 나는 새로운 재주를 익힌 내가 마음에 든다. 나를 대접할 음식을 그럴 듯하게 차려내는 내가 뿌듯하다.

홍인혜 시인·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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