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그들이 실패한 ‘코돌이’가 안되려면

국민일보

[김명호 칼럼] 그들이 실패한 ‘코돌이’가 안되려면

입력 2020-05-04 04:01

2004 탄돌이와 2020 코돌이 출현은 같기도 다르기도 해
세상 바뀐 것 보여주겠다는 인식은 당시의 오만함과 비슷

진보 이젠 명백한 주류 기득권 인정해야, 소수·비주류 변명 안 통해…
과거 실패의 되풀이 여부는 자신들의 선택에 달려

21대 총선 결과가 나오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열린우리당 사례를 들며 오만에 취하지 말라고 했다. 여당의 압도적 승리에 정말 많은 이들이 그런 생각을 가졌을 게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분노한 민심 덕택으로 2004년 17대에 당선한 의원들을 탄돌이라고 불렀다. 공인 역할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약간 비하적이고, 유머스러운 조어였다. 이들이 국회에 들어오자마자 세상이 바뀌었다는 태도로 오만하게 밀어붙인 이른바 4대 악법 폐지 때문에 ‘~돌이’ 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16년 후 이번 총선은 ‘코돌이 탄생’이다. 문재인 정권의 정책 실패나 경제 실적, 갈라치기 정치에 대한 실망 등 적지 않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승리 요인은 코로나 발생과 대응이다. 만약 코로나 발생 초기, 마스크 대란 절정 시기, 유엔회원국의 반 이상이 한국인 입국금지를 했을 때 투표했다면 어땠을까. 가정이 부질없다지만 결과는 같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어떤 결과가 단일 요인에 의해 결정됐다고 보는 건 지극히 불합리하다. 품격도 없고, 대안도 없고, 정권 증오와 견제 심리에나 호소했던 보수의 무능을 애당초 선택 대상으로 꼽지 않았던 중도층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대응이 결정적 이유 중 하나였다는 건 여론조사 추세에서도 알 수 있다. 코돌이는 단지 자극적이고 공격을 위한 표현을 넘어서 실체적 현상을 규정짓는 조어다. 애초 당선 안정권이 아니었던 이들은 초선이건 다선이건 코돌이 또는 범코돌이 의원이다.

16년 전과 지금, 같은 것과 다른 것들이 있다. 압승을 완전한 지지로 해석하는 게 같다. 국회 시작도 전에 “세상 바뀐 것 알도록 갚아주겠다”는 언급이 그렇다. 그때도 그랬다. 내 편만을 향한 4대 악법 폐지 추진이 있었고, 결과는 다음 선거에서의 폐족이었다. 둘째, 어찌보면 정치의 불변이라 할 수 있는데 핵심지지층과 이에 부응하는 정치권 강경파가 정권의 주류를 형성하는 것이다. 친노와 친문이 그것이다. 두 세력은 원칙적으론 이어지지만 미묘하게(어쩌면 본질적일 수도 있다) 결이 다르다. 친노 시절에는 대통령이 핵심지지층에 반대 의견도 제시하고 설득하는 힘과 비중이 있었다. 현재 ‘문파’ 상황에서는 그 반대 현상이 고착화된 듯하다. 대통령과 핵심지지층 관계 말이다.

다른 점도 두 가지 있다. 2004년 친노 주류는 폐족이 될 것이란 걸 상상도 하지 않았다. 지금 친문 주류는 처참한 폐족 상황을 겪고 다시 거대 권력을 탄생시켰다. 이 차이는 상반된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성공한 이들이 지나친 자만심으로 오류를 범하게 되는 휴브리스(Hubris)에 빠지게 될지, 실패를 경험 삼아 결과적으로 좋은 성과를 이끌어내는 방법과 절차를 사용할지는 자신들이 선택할 몫이다. 또 다른 점은 진보·보수 진영의 대선주자 상황이다. 2004년에는 보수 진영에 이명박 박근혜라는 뚜렷하고 유력한 후보들이 있었고, 진보 진영은 4대 악법과 이념적 변혁만 추구한 탓에 강력하고 실용적인 후보를 키우지 못했다. 명백한 실패였다. 지금은 정반대로 궤멸 상태의 보수는 후보를 꼽지 못하고, 진보는 여러 사람 중에 고를 수 있게 됐다. 대선후보 다수 보유가 차기 대선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고 보는 게 일반적 예상이긴 하다. 그러나 강경파 독주, 이념적 색채 강화와 대선 주자 간 권력투쟁이 번진다면 어떤 상황이 될지 알 수 없다.

2004년과 같은, 다른 상황이 어우러진 정국에서 방향을 가를 사람들은 뭐니뭐니 해도 다수의 코돌이 의원들이다. ‘세상 바뀌었다’에서부터 공수처 1호 수사대상 적시, 공수처 운영방안 설정, 토지공개념 추진, 전 국민 고용보험제 같은 것들을 적절한 절차·수렴 없이 대중영합적으로 바람을 잡을 것인가, 좋은 결과를 어떻게 도출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코돌이들의 과제다.

대통령, 지방권력에 이어 거대 의회권력까지 거머쥔 여권에 이젠 남 탓이란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지금까진 야당의 발목잡기와 친일 주류기득권의 방해로 우리가 나라다운 나라로 더 진전시키지 못했다는 소수·비주류 전략이 어찌됐든 먹히기도 했다. 이젠 진보가 명실상부한 주류이고 기득권이다. 도덕적 우위라는 것도 조국 사태로 무너졌다. 책임과 결과만 다투는 정치가 있을 뿐이다. 역사는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되풀이한다고 했다.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은 없다.

편집인 mhkim@kmib.co.kr

포토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