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가시’를 은혜로 승화해 복음적 통일·세계선교 이뤄야

국민일보

‘코로나 가시’를 은혜로 승화해 복음적 통일·세계선교 이뤄야

오정현 목사의 코로나19 이후 함께 재건의 길로 <상>

입력 2020-05-1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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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교회 성도가 지난 10일 주일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교회 정문에 설치된 QR코드에 접속하고 있다.

어느 날 우리를 찾아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개인과 교회와 사회에 엄청난 자국을 남겼고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우리는 주일 예배를 온라인으로 드리는, 한국교회사에서 전무한 일을 경험했다. 그러나 역사의 커튼을 걷어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심신이 지쳐서 사막처럼 황량해진 국민에게 앞으로는 한국교회가 영적 오아시스의 역할을 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에 희망이 되겠다는 사명을 회복해야 한다. 새로운 미래를 향한 도전을 시작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더 큰 승리를 위한 출발점, 진원지가 되기를 소망하며 포스트 코로나의 대응을 넘어 새로운 시대를 구상하는 재건의 사명을 찾는다.

코로나19 가시를 인생 은혜, 민족의 은혜로

우리는 온·오프라인으로 연결된, 초연결 초밀집 사회에 살고 있다. 코로나19의 위기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모두의 문제가 됐다. 코로나19의 길은 전 세계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이다.

지금까지 목회 여정을 돌아보면 뇌리에 박힌 두 사건이 있다. 첫 번째는 미국 이민목회 시절인 1992년에 일어난 LA폭동이다. 우리는 비장한 각오로 총을 들고 교회를 지켜야 했다. 2년 후 발생한 강도 6.7의 노스리지 지진의 강력한 진동은 강단 밑 피아노를 강단 위로 올려버렸다. 앞뒤 잴 것 없이 성도들의 안위를 돌봐야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는 이보다 더 힘들지 모르는 낯선 길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역사적인 격변의 한복판을 어떻게 지났을까. 로마제국에 대역병이 창궐했을 때 이들은 박해를 받으면서도 더욱 봉사의 자리로 나아갔다. 시신들을 정성껏 매장하고 어려운 이들을 돌보았다. 심지어 환자에게 병이 감염되자 그 아픔을 받아들이고 고통을 감내했다.(디오니시우스, AD 200~256)

마침내 이들은 오해를 걷어내고 로마 제국에 거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초연결사회, 너와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체화하는 그리스도의 마음은 이 시대를 섬기라는 사명이기도 하다. 사랑의교회도 안성수양관과 제천기도동산을 코로나19 생활치유센터로 내놓고 임차료를 지원해 작은교회들을 섬겼다.

한 성도가 11일 태블릿PC로 ‘SaRang On 정오 기도회’에 접속해 기도하는 모습. 정오 기도회는 지난 2월 24일 시작됐으며, 하루 1만여명이 참여해 나라의 회복과 치유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코로나19 가시를 우리에게 왜 주셨을까

사도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을 갖고 있었지만, 이 위대한 사도도 가시가 있었다. 바울은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고후 12:7)이라고 가시의 이유를 설명했다. 바울은 가시에 찔려 은혜를 알고 가시에 찔려 오히려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했다. 인생 가시를 인생 은혜로 삼았다.

혼돈과 깊은 두려움의 바다에서 벗어나 우리는 코로나19라는 ‘가시’를 더 온전한 인격으로 빚으시고 주님의 심정을 더 깊이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 인생의 은혜로 삼아야 한다.

1857년 미국 보스턴에서 제레미아 랜피어(Jeremiah Lanphier)가 정오기도회를 시작했다. 시작은 미미했다. 6개월이 지나 1만명이 마음을 모아 기도했고 결국 이 기도회는 미국 대각성운동의 불씨가 됐다.

사랑의교회는 무릎 꿇어 교회 마룻바닥을 눈물로 적셨던 믿음의 선진들처럼 함께 말씀을 나누며 나라와 민족의 치유, 회복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매일 정오, ‘사랑 온(SaRang On) 정오 기도회’에서 기도한다. 하루에 1만 몇천 명, 어떤 날은 2만 명이 넘는 성도가 기도의 물꼬를 터서 한국교회 제3 부흥의 마중물이 되기를 소원한다.

대한민국의 최고 자산은 ‘고난 자본’이다

이 민족은 위기에 강하다.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는 북한 때문에 한반도는 바람 잘 날이 없다. 바다로 나가려는 대륙 세력과 대륙을 차지하려는 해양 세력의 틈바구니에 우리나라가 있다.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 우리 겨레가 겪어온 눈물의 세월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신고(辛苦) 그 자체였다.

1997년의 외환위기로 맞은 IMF 구제금융 사태도, 2008년 세계금융위기도 우리는 기도로 버티고 이겨냈다. 어려운 환경은 우리가 절박하게 매달리고 통성으로 부르짖고 새벽을 깨우며 철야와 금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 세계선교의 마무리는 신고(辛苦) 끝에 찾은 이 민족의 사명이다. 우리의 ‘고난 이해 자본’ ‘고난 공감 자본’ ‘이심전심 자본’은 제3세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토대가 됐다. 코로나19 역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인도하심을 기대하면서 낙타 무릎으로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나아갈 때이다.

오정현 사랑의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