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디지털 사회와 코로나19

국민일보

[돋을새김] 디지털 사회와 코로나19

신창호 사회2부장

입력 2020-05-12 04:05 수정 2020-05-12 17:35

움베르토 에코의 오래된 소설 ‘장미의 이름’은 “예로부터 장미는 존재해왔다. 그러나 이제 남은 것은 장미의 이름뿐”이란 문장으로 끝난다. 아드소란 소년이 윌리엄이란 수도사를 따라나서며 시작되는 이 소설은 유명론(唯名論) 철학의 명제가 인간과 인간이 얽힌 사회에 얼마나 큰 위력을 선사하는지를 탐구한 이야기다. 장미가 장미라는 이름으로 사람에게 알려진 순간, 우리는 ‘진짜’ 장미보다 훨씬 근사한 ‘개념’의 장미를 알게 된다. 넓은 꽃잎이 붉은 또는 흰 혹은 노란색을 띠며 특유의 향기가 난다는 사실을 인간은 장미란 이름 안에 다 담을 수가 있게 됐단 뜻이다.

20세기 중후반 숫자 2진법으로 시작된 컴퓨터의 논리는 너무도 단순하다. 모든 정보를 0과 1이란 숫자로 치환해 저장할 수 있고, 저장된 정보를 판단하는 것도 0과 1로 해결할 수 있다는 수학에 근거해 컴퓨터는 등장했다. 컴퓨터는 인터넷으로, 스마트폰으로, 로봇으로 발전하더니 21세기를 한참 지난 지금엔 인간의 전 영역이 0과 1로 기록되고 저장되며 판단되는 디지털 사회를 만들어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내게 스마트시티니, 사물인터넷이니, 5G니 하는 것들은 별것이 아니라 여겨졌다. 좀 불편한 것만 감수한다면 이런 첨단 정보통신기술(ICT)들이 없다 해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으리란 확신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난 1월부터 불어닥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공포는 이런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게 만들었다. 치료약도 없고 백신도 없으며 무서운 전파속도를 가진 이 바이러스가 얼마나 빠르게 퍼져나갔는지 그리고 이를 각 나라가 어떻게 막아내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디지털 사회의 위력을 실감하고도 남는다. 여전히 출근부와 결재서류에 직접 도장을 찍어야 하고, 서류뭉치로 절차를 밟아 보고해야 하는 ‘아날로그 사회’ 일본은 코로나19 대응 꼴등 국가란 불명예를 뒤집어썼다. 재택근무가 어려우니 사회적 거리두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강제 봉쇄령을 내리면 경제활동마저 올스톱되니 일본의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반면 한국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자동적으로 실행됐고, 그렇다고 경제활동이 멈추지도 않았다. 디지털 사회였기 때문이다. 정부와 기업이 오래전에 전자화됐고, 사회 곳곳이 디지털화돼 있었다. 이 치명적 바이러스를 없애는 가장 치명적인 수단인 ‘언택트(untact·비접촉)’를 실행하기에 최적화된 사회인 셈이다. 디지털은 수동적으로만 코로나바이러스를 차단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누가 어떻게 감염됐고, 확진자가 누구를 접촉했는지 그리고 확산 범위마저 예측하게 해준다. 구성원의 스마트폰 위치 데이터와 신용카드 기록, 공공교통시스템을 운영하는 중앙 및 지방정부의 빅데이터를 통해서 말이다.

K-방역이 세계 각국의 코로나19 대응모델이 된 건 문재인정부나 서울 같은 지방정부가 잘 해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모든 부분이 민관을 따지지 않고 디지털화된 덕분이다. 디지털 사회의 효율성에 관해선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여지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 이 슈퍼맨 같은 디지털의 위력이 진짜 ‘만능’일까. 디지털 사회는 ‘빅브라더’에 의해 조종되고 통제되며 조작되기 십상이다.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이 이번 사태에서 어떻게 정보를 가공하고 통제하며 조작했는지가 그 증거다.

디지털의 양면성은 0과 1로 치환돼 축적된 정보를 누가 관리할 건지 그리고 그 관리자를 감시하는 시스템의 존재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민주적 권력에 의해 투명한 절차에 따라 쓰이면 최대의 효율을 발휘하겠지만, 정반대의 주체가 장악한다면 최악의 통제 기제가 될 뿐이다.

신창호 사회2부장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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