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 깎이는 양처럼, 하나님의 작업에 자신을 온전히 맡겨야

국민일보

털 깎이는 양처럼, 하나님의 작업에 자신을 온전히 맡겨야

정광재 목사의 형상회복 <4> 하나님의 무대 세팅

입력 2020-05-1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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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재 서울 다메섹교회 목사(왼쪽 네 번째)가 2017년 8월 일산농협과 네트워크 협약식을 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다메섹교회는 경기도 고양 다메섹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 가운데 삶의 무대를 갑자기 바꾸실 때가 있다. 그때는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플랜이 새롭게 세워지는 때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의 환경적 섭리에 민감해야 한다. 새로운 환경이 펼쳐질 때 더욱 민감하게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의중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작업에 요동을 치지 않고 털 깎이는 양처럼 온전히 그분께 자신을 내어 맡겨야 한다. 발버둥 치며 소란을 피우면 다칠 수 있다. 잠잠히 수술대에 오른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듯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질 때 당황하지 말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신뢰해야 한다. 수술이 끝나면 의사가 수술 경과를 설명하듯이 어떤 작업이 이뤄졌는지 알게 하신다. 원래 수술실 분위기는 공포스럽다. 하지만 생명을 살리는 곳이 수술실이다.

어느 날 기도 중에 갑작스러운 하나님의 통보가 있었다. “내가 그를 바로처럼 사용하겠다.” ‘바로처럼요, 강퍅한 바로 말씀입니까.’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건은 내 신앙에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그 고통은 생전 처음 겪는 일이라 너무 아팠다. 죽을 것 같은 고통으로 존재 자체가 흔들렸다. ‘이런 일을 허락하신 분을 정말 믿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나님께 시험이 들었다. 그땐 믿음이 그랬다.

자존심은 갈기갈기 찢겨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겹겹이 입었던 내 의의 옷은 속살을 드러냈다. 거짓 온유의 껍질 속에 혈기와 분노가 분수처럼 솟구쳐 올라 주변을 더럽혔다. 상황도 힘들었지만, 거기에 반응하는 나의 태도에 너무 놀랐다. 정말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죄성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자아파쇄 작업 전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붙이셨는데 선물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선물의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하나님의 선물은 단지 ‘하나님이 주셨다, 하나님이 붙이셨다’는 뜻이다. 궁극적으로 유익한 것이다.

영적 욕심이 많았던 나는 영적으로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으리라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의도는 다른 곳에 있었다. 우리의 생각은 너무 주관적이다. 세상 모든 일을 하나님의 관점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는 것에서 문제가 생긴다.

어느 날 울면서 그 사람의 단점을 하나님께 고자질하며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완벽하니? 너도 그 사람과 같은 환경이었다면 그보다 더하지 않았겠느냐. 그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 내가 너를 사랑하듯 너도 그를 사랑하라.”

율법적 신앙에 균열이 일어나는 사건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신다. “그가 자의로 한 것이 아니고 내가 너를 깨뜨리기 위해 사용한 도구란다. 나는 그 사람 아니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도 그 일을 할 수 있단다. 그는 아무 잘못 없으니 너 자신을 살펴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깨닫길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이 심령을 강타했다.

우리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사물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봄으로써 초점을 잃는 실수를 한다. 우리 삶의 모든 상황과 찔러 대는 가시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깨닫는 통찰력과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이유 없는 상황은 절대 없다. 다만 우리가 겪는 일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흘려버리는 소홀함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늘의 보고를 열어 투자할 사람을 찾으신다. 절대 소홀히 하지 않으신다. 모든 결점을 들춰내시고 약함을 만지신다. 투자할 사람을 찾으시면 아낌없이 모든 것을 쏟아부어 최고의 가치를 창출하신다.

상대의 허물은 내 속의 것이 상대에게 비취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열어 주신 귀한 영상이다. 손사래 치며 ‘나는 절대 아니다’라고 부정해도 정도의 차이일 뿐 자신의 모습이다.

다른 사람에게 못마땅하게 보이는, 자꾸 눈에 거슬리는 모습이 있는가. ‘왜 저래’ 하고 불편해하는 그 모습이 나한테도 있다. 하나님께서 내 속에 있는 것을 처리하라고 사람 거울로 보여주신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고 아직 표면으로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을 볼 줄 아는 눈이 열리지 않아 자꾸 그 모습을 보고 상대를 판단하고 정죄한다. 사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모습이 너의 모습이니 너 좀 변해라” 하시는 사인이다. 주변의 지체를 보고 판단하고 정죄했다면 낮아짐으로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내신 여러 환경의 자원을 잘 활용해 내면을 아름답게 주님의 마음으로 단장해야 한다.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 속에서 주님의 뜻을 발견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이것이 신앙인의 참 능력이며 형상 회복의 삶이다.

우리는 영의 눈이 열려 자신을 볼 줄 알고 주님의 뜻을 분별해야 한다. 그래서 아침 빛같이 뚜렷하고 달같이 아름다우며 해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같이 당당한 신부로 서야 한다.

현숙한 여인이 거울을 보며 자신의 매무새를 점검한다. 우리도 말씀의 거울로 자신의 내면을 여러 각도로 비춰야 한다. 그래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준비된 주님의 아름다운 신부가 돼야 한다.

▒ 성령께서 인도하는 목회
새어머니 강요에 고아원으로… 이유없이 형제복지원에 끌려가

내 인생의 연단은 2살 때부터 시작됐다. 태어나 두 살 때까지 친어머니 손에 자랐다. 당시 아버지는 육군 특무상사이자 군대 매점(PX) 관리관으로 남는 것은 돈이요, 보이는 것은 여자였다. 아내를 버리고 춤바람을 피워 이혼했고 지금의 새어머니와 결혼했다.

재혼 당시 아버지는 새어머니에게 자신을 총각이라 속였다. 새어머니의 미움과 원망은 어린 형과 나에게 고스란히 돌아왔다. 새어머니의 구박은 견디기 힘들었다. 한 끼 식사로 일부러 까맣게 태운 누룽지와 한여름 햇빛에 익어 쉰내 나는 김치를 줬다. 달궈진 연탄집게로 형과 나를 지지기도 했다. 한겨울엔 얼음을 깬 찬물을 바가지로 뿌리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감당치 못할 모욕적인 욕설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일마저 감사할 따름이다. 모든 과정은 주님이 세우시는 섭리와 계획안에서 이뤄진 일이기에, 그 가운데 나를 새롭게 빚으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뜻이 있음을 알기에 감사하다.

당시 아버지는 매일 자정이 넘어 들어오거나, 외박하기 일쑤였다. 아버지에게는 춤바람도 많이 불었다. 아버지에게는 청춘을 불사르는 좋은 바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형제에게는 한여름 한파처럼 강하게 몰아쳤다.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는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에 맞춰 ‘슬로우 슬로우 퀵퀵’하며 몸을 흔들며 춤추는 것을 즐겼다.

8살이 되자 새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나를 아들이 없는 큰집에 양자로 보내라”며 졸랐다. 아버지는 나를 큰어머니가 계신 부산의 벧엘고아원에 양자로 보냈다. 큰어머니는 딸 셋을 데리고 고아원 보모로 있었다. 검정 고무신에 빡빡머리 모습으로 그렇게 나의 단체생활은 시작됐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이 벧엘고아원으로 보내시고 복음을 듣게 하신 것이다. 고아원은 주일이면 우리를 바깥 교회로 보내면서 헌금하라고 20원을 줬다. 늘 배가 고팠기에 10원은 과자를 사 먹고 10원만 교회에 헌금했다.

어느 날, 나는 걷어 놓은 연보(헌금)에 손을 댔다. 그 모습을 본 한 아이가 주일학교 선생님에게 이르는 사태가 발생했다.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고 바들바들 떨고 있던 나에게 선생님은 다가와 꼭 안아 주셨다. 마치 엄마의 품속 같았다. 선생님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셨다.

“이 아이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주님, 우리 광재를 만나 주시고 써 주시옵소서.”

선생님의 눈물은 내 눈물과 함께 얼굴을 타고 내렸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 순간이었다.

이듬해 어둠이 내리는 어느 여름날 저녁, 고아원을 나와 길을 걷고 있는데 나를 본 순경이 파출소로 데려갔다. 정말 아무 잘못도 없었는데 한 손에 수갑을 채워 긴 나무의자에 연결해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그곳은 부산 주례파출소였던 것 같다.

몇 시간이 지나 깜깜한 밤이 되자 탑차 같은 트럭이 왔고 그 안에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이 내려 나를 비롯한 2~3명을 트럭 안에 태웠다. 차 안에는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이 굵고 긴 몽둥이로 위협하며 술 취한 사람, 고함지르는 사람, 분위기가 이상해서 쳐다보는 사람 등을 사정없이 구타하기 시작했다. 나도 예외 없이 몽둥이찜질을 당했다.

얼마 지나 우리는 커다란 감옥 같은 곳에 도착했고 신입 소대라는 방에 배치돼 강제로 옷을 벗고 신체검사를 받으며 신상을 등록했다.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11살의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곳은 형제복지원이었다.


정광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