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공장’ 옆에서 만나는 초여름 ‘설국열차’

국민일보

‘예술공장’ 옆에서 만나는 초여름 ‘설국열차’

옛 기억을 재생시키는 전북 전주

입력 2020-05-13 18:35 수정 2020-05-13 19:02
전북 전주시 팔복동 ‘북전주선’ 철로를 따라 하얀 이팝나무꽃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그 사이로 빨강·파랑으로 채색된 열차가 느릿느릿 지나가며 동화 같은 풍경을 펼쳐놓고 있다.

입하가 지나면서 초여름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이맘때 이팝나무는 백색 꽃으로 나무 전체를 덮을 정도로 만발한다. 도심에서 하얀 꽃 터널 속으로 빨강·파랑으로 채색된 열차가 느릿느릿 지나가며 동화 같은 풍경을 빚어내는 곳이 있다. 전북 전주 팔복동이다. 눈꽃 같은 꽃이 지고 나면 푸르름으로 가득 찬다. 티 없이 맑은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길이다. 인근에 옛 공장이 변신한 ‘팔복예술공장’도 있어 여행자의 기억을 재생시킨다.

팔복동 전주제1일반산업단지로 들어서면 팔복예술공장 가는 길이다. ‘북전주선’ 철로와 나란하다. 1981년 전라선 철도가 전주의 동북부를 우회하는 경로로 이설되면서 동산~북전주 구간은 ‘북전주선’이 됐다. 제지회사로 화물을 실어 나르는 기찻길이어서 ‘전주페이퍼선’ 또는 ‘전용선’으로 불린다.

철로 주변에 이팝나무가 늘어서 있다. 1990년대에 조경수로 심어진 것으로, 5월이면 꽃놀이하려는 이들과 사진작가들에게 인기다. 6월에는 풍성한 초록이 대신한다.

‘팔복예술공장’ 녹슨 원기둥과 ‘쏘렉스’ 굴뚝.

철로 바로 옆에 팔복예술공장을 알리는 녹슨 원기둥이 보인다. 뒤쪽에는 옛 공장 이름 ‘쏘렉스’가 적힌 굴뚝이 우뚝하다. 1969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공장단지가 들어섰다.

팔복예술공장 건물은 1979년 카세트테이프를 만드는 공장으로 문을 열었다. 공장은 호황을 누리다가 1980년대 말 CD가 나오면서 위기를 맞았다. 회사는 1987년 노조와 임금 협상 과정에서 공장을 폐쇄했고, 결국 1991년 문을 닫은 뒤 25년 동안 방치됐다. 이후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산업 단지 및 폐산업 시설 문화 재생 사업’에 선정됐고, 2년 가까운 준비 기간을 거쳤다.

화려한 색으로 장식된 팔복예술공장 C동.

2018년 3월 팔복예술공장이 3개 동 가운데 A동을 중심으로 문을 열었다. B동은 교육센터, C동은 다목적 공간으로 예정돼 있다. 공장은 옛 건물의 나이테를 잃지 않았고, 예술은 그 외관에 제 개성을 발휘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A동과 B동을 잇는 붉은색 컨테이너 브리지가 낡은 건물에 생기를 더한다.

A동 로비 오른쪽에 카페 ‘써니’가 있다. 공장의 특징을 살려 1970~80년대 정서를 반영했다. 2011년 개봉한 영화 ‘써니’가 떠오르고, 보니엠의 노래 ‘Sunny’가 귓가에 맴돈다. 하지만 카페 써니는 카세트테이프를 만들던 ‘썬전자’와 노동자 소식지 ‘햇살’에서 따온 이름이다.

카페 안에는 탁영환 작가가 디자인한 ‘써니’가 천장에 닿을 정도로 크다. 청바지에 초록색 두건이 여공(女工)을 떠올리게 한다.

2층은 전시 준비중이다. 2층 컨테이너 브리지 쪽은 B동으로 안내한다. 컨테이너 브리지는 B동 입구에서 멈춘다. 돌아 나오는 길에는 1층 중정으로 내려간다.

초록빛이 싱그러운 전주수목원 생태습지원.

한국도로공사 전주수목원도 찾는 이들이 많다. 1974년 묘포장으로 시작했다. 1983년부터 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훼손한 자연환경 복구를 위해 풀과 나무를 심고 다양한 식물 종을 모은 자연학습장으로 조성됐다.

29만1795㎡ 부지에 생태습지원, 암석원, 약초원, 죽림원 등 13개의 주제원이 자리한다. 이곳에도 요즘 이팝나무꽃이 한창이다. 6월에는 장미원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다.

여행메모

화물 열차 운행 이팝나무 철로 진입 금지
15일 팔복예술공장에 퀘이 형제 작품전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팔복예술공장으로 가려면 호남고속도로 전주나들목에서 빠지면 쉽다. 기차를 타고 가는 것도 편하다. KTX가 하루 14차례 운행한다. 1시간 30분 쯤 소요된다.

이팝나무 철로는 화물 열차가 하루 2~3차례 오간다. 대체로 오전 11시 전후로 운행하지만 정해지지 않았다. 사진을 찍으려고 철로로 들어서면 철도안전법에 따라 최고 1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팔복예술공장은 무료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월요일 휴관)다. 카페 써니 영업시간은 오전 10시~오후 7시(월요일 휴무)다. 2층 전시실에서 오는 15일 다채롭고 신비한 영상 애니메이션을 창작하는 퀘이 형제의 작품세계를 국내 최초로 선보인다. 최근 개장한 C동 ‘써니부엌’에서 식사도 가능하다.

전주수목원도 무료다. 월요일과 설·추석 당일은 휴무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입장할 수 없다.



전주=글·사진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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