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플렉스] “좋은 삶은 좋은 기억을 많이 가진 삶… 선한 영향력 전하세요”

국민일보

[갓플렉스] “좋은 삶은 좋은 기억을 많이 가진 삶… 선한 영향력 전하세요”

<8> ‘바보 예수’ 김병종 화백

입력 2020-05-14 00:17 수정 2020-05-14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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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 교수가 12일 경기도 과천 자택에서 자신의 작품 ‘바보 예수’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 교수는 ‘바보 예수’를 “신앙의 고백이자 기도와 같은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과천=강민석 선임기자

쏟아지는 햇볕을 받고 자라나는 새싹, 노랗게 피어난 들풀, 분분히 날리는 송홧가루….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며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완연해진 봄의 풍경이다. 그 풍경은 생명을 노래한 화가, 김병종(67·서울대 명예교수 겸 가천대 석좌교수) 화백의 화폭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12일 방문한 경기도 과천 김 화백의 자택은 온통 푸른빛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진한 풀 내음이 풍겼고 방마다 창밖으로 소나무를 볼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예술작품으로서 자연을 표현하는 작가다. 모든 예술은 하나님의 작품인 자연을 모방하고 있다는 그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

작품 ‘바보 예수’로 신앙을 고백한 그는 ‘생명의 노래’와 ‘송화분분’을 통해 자연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담아냈다. 지금은 다음 달 6일 서울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에서 열리는 ‘김병종 40년’ 기획전을 준비하고 있다.

김 화백은 40년 가까이 서울대 미대에서 제자를 가르쳤다. 30여회의 개인전과 25권의 저서까지, 세상을 향해 위로의 메시지를 건네 온 그가 국민일보의 청년응원 프로젝트 갓플렉스(God Flex) 인터뷰에 응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바보 예수’는 어떤 작품인가요.

“1980년대 민주화 투쟁이 가열되면서 사회 상황이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어느 날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캠퍼스를 지나는데, 문득 ‘예수님이 지금 오신다면 무슨 해결책을 내실까’ 하는 생각과 함께 십자가상 그리스도의 형상이 영상처럼 펼쳐졌습니다. 유대에서 혁명과 민중봉기가 가능했는데도 바보같이 자기희생을 통해 십자가의 길로 가신 그분의 삶이 떠올랐죠. 이후 ‘바보 예수’ 연작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생명과 자연을 말하는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바보 예수’를 표제로 개인전을 하고 얼마 안 돼 연탄가스 중독으로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관념적으로 느껴졌던 십자가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끼며 창조자 하나님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곳곳을 둘러보니 세상이 온통 하나님의 창조 미술관이라는 걸 깨달았죠. 최근에는 생명의 분자, 바람과 같은 호흡 등 더 형이상학적인 것에 관심이 생겨 작품 세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사회가 혼란스럽습니다.

“헝가리의 철학자 게오르그 루카치는 ‘문명의 과도한 속도, 즉 영혼의 진보적 타락’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문명의 속도는 현란해지지만, 정신은 오히려 빈곤해지는 현상을 말한 것이죠. 코로나19로 이 같은 속도에 브레이크가 걸렸습니다. 상처와 아픔이 있겠지만, 한 걸음 나아갈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도 재정비가 필요합니다. 교회라는 공간성에서 벗어나 들에 핀 꽃에서도 하나님의 창조를 느낄 수 있도록 신앙적 세계관을 세워나가면 어떨까요.”

-청년들이 예술을 체험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미술관과 음악당은 일본이나 유럽 등 외국과 비교해 턱없이 부족합니다. 교회가 청년들이 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돼주면 좋겠습니다. 수준 높은 예술 분야와 교섭해 세상의 가짜 기쁨, 가짜 위로가 아닌 근원의 손길을 잡을 수 있도록 돕기를 바랍니다. ‘미’라는 건 결국 하나님과의 소통 채널이니까요. 나아가 교회라는 공간도 아름답게 꾸며 다음세대와 가까운 공간이 되면 좋겠죠.”

-청년들이 예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뭘까요.

“아름다움의 체험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현실의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 위로받는 것, 그게 바로 예술의 힘입니다. 거창한 미술관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잠시 문명의 시간에서 벗어나 자연의 시간으로 가 보기를 추천합니다. 예술은 결국 자연을 모티브로 그 위에서 상상력을 펼치는 일이니까요. 꽃 한 송이를 보면서도 그 형태와 색채의 아름다움을 깊이 음미하면 훌륭한 감상이 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어려운 세상이라고 많이 얘기합니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이 ‘시간은 기억이다’는 말을 했습니다. 좋은 삶은 좋은 기억을 많이 가진 삶이라고 볼 수 있죠. 세속적으로 인기 있는 분야가 아니라, 자신이 정말 잘할 수 있고 오래도록 사랑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좋은 시간을 쌓아가기 바랍니다. 나아가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갖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을 하면 좋겠습니다. 선의와 사랑에 대한 기억, 좋은 경치를 본 기억, 그리고 주님과의 화평한 기억. 이 기억의 스펙을 잘 쌓는 게 세속적 스펙을 쌓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걸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과천=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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