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약한 자를 희생하라”

국민일보

[바이블시론] “약한 자를 희생하라”

조정민 베이직교회 목사

입력 2020-05-15 04:04

여전히 코로나바이러스 기세가 등등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진정 기미를 보이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고, 중국 우한에서 또다시 확진자 소식이 들립니다. 미국과 러시아에서는 대통령 최측근들까지 감염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인도와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그야말로 전 지구적 대재앙입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런 재앙이 낯선 일은 아닙니다. 온 세상을 고통으로 밀어넣은 감염병의 역사는 오랜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전 세계가 과거 어느 때보다 큰 충격을 받은 데는 디지털 미디어의 역할이 작지 않습니다. 실시간으로 전 세계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공개되고 있다는 그 한 가지 사실이 오히려 과거 어떤 시대에 비해서도 낯선 모습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죽음의 공포와 통계 수치가 정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 수치가 치솟을수록 마치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처럼 도리어 역병과 죽음에 대해 둔감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각국의 대처에도 상당한 차이를 발견합니다. 민족성과 문화적 배경이 드러나기도 하고, 정치체제 특성과 보건행정력 실체가 그 민낯을 내보이기도 합니다. 주목할 것은 초기 대처가 미흡한 결과 확진자가 폭증할 때는 어느 시점에서 반드시 의료체계가 붕괴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선진국도 의료 자원이 무한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한정된 의료 자원이 감당할 수 없는 순간에 고심하게 되는 것은 생명에 대한 선택적 결정입니다. 한마디로 누구를 살리기 위해 애써야 하고 누구를 죽음에 그냥 내맡기느냐는 결정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선진국들의 공통된 특징을 생명 중시와 보편적 인권의식으로 인식해 왔습니다. 그 무엇보다 약자에 대한 남다른 배려를 주목해 왔습니다. 노약자와 부녀자, 장애인에 대한 일상의 배려는 늘 배우고 좇아가야 할 사회적 덕목으로 생각했고, 전면적 사회복지제도는 언젠가 모든 국가가 실현해야 할 정책과제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은 2020년 인간의 본성은 과거 어느 역사의 시점에 비해도 그렇고 동과 서의 어느 국가와 견준다 해도 본질적 차이가 없음을 보여줍니다.

“Sacrifice the Weak. Reopen TN”. 지난달 미국 테네시주의 한 여성이 거리에 들고 나온 시위 피켓은 이 시대가 생존을 위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주 정부의 봉쇄조치 해제를 요구하면서, 그리고 급박한 경제 회생을 위해 보다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요구하면서 내세운 해결책은 ‘약자를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이 피켓은 사실 따지고 보면 한 개인의 주장만이 아닙니다. 이미 이번 사태가 급속히 악화할 때 중국과 이탈리아 의사들이 고심하다가 결국 마지막에 결정했던 선택의 기준입니다. 생존 가능성이 높은 사람, 완치 이후 사회공헌도가 높을 것으로 예측되는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산소마스크를 제공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젊고 건강한 사람들에게 생존 기회의 우선권이 주어졌습니다.

이번 사태의 공식적 종식 선언에 대해 낙관론과 비관론이 공존합니다. 어느 쪽이건 유사한 사태가 재발되거나 반복될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생각에는 일치합니다. 그때마다 인간은 또다시 생존의 우선권이 어디에 있는지를 되풀이해서 묻고 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어떤 생명의 가치가 더 큰가를 따지는 것은 인간의 기준이고 모든 생명의 가치가 동일하다는 믿음은 성경의 기준이라는 사실입니다. ‘약한 자를 희생하라’는 효용가치 일변도의 세상은 비록 이 사태를 넘어선다 해도 이런 사태를 초래하게 된 사회악의 구조적 고통으로부터는 구원받을 길이 없습니다. 사실 구원은 먼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굴레를 벗기는 일입니다.

조정민 베이직교회 목사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