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총수의 품격으로 완성되는 ‘브랜딩’

국민일보

[세상만사] 총수의 품격으로 완성되는 ‘브랜딩’

문수정 산업부 차장

입력 2020-05-15 04:03

애플, 삼성, 스타벅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나 느낌이 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디자인으로 새로운 시대를 연 애플, 탁월한 제품력으로 애플에 맞서는 삼성, 현대인의 공간에 대한 갈망을 절묘하게 파고든 스타벅스. 요즘 기업들이 공략하고 있는 ‘브랜딩’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경험해보지 않았더라도 선명한 이미지, 또렷한 감성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브랜딩이다.

브랜딩의 관점에서 국내 기업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지점에 닿게 된다. 브랜딩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건 아니지만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 ‘총수의 품격’이다. 우리나라 기업에만 적용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재벌과 대기업에 비판적 관점을 견지해 온 국내 소비자들에게 기업의 대표적 인물은 때로 ‘브랜딩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

의도했든 아니든 오뚜기의 브랜딩은 귀감이 된다. ‘갓뚜기’라는 수식어를 얻게 된 데는 총수 일가의 역할이 컸다. 오뚜기는 총수 일가의 성실납세, 갑질 없는 기업 문화, 높은 정규직 비율 등이 널리 알려지며 ‘착한 기업’으로 브랜딩됐다. 함영준 회장의 최근 행보도 눈여겨볼 만하다. 함 회장은 뮤지컬 배우인 딸의 유튜브에 출연해 소탈한 모습을 보여줬고, 오뚜기 브랜딩에는 ‘훈훈함+1’ ‘친근감+1’이 추가됐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이 방면에서 선두에 서 있다. 신세계의 브랜딩에 정 부회장의 기여도는 상당하다. 개인 소셜미디어로 소비자들과 소통하면서 젊은 감각을 보여 온 정 부회장은 얼마 전 TV ‘맛남의 광장’(SBS)에서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의 농어가 도움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이며 미담을 만들어냈다. 계획된 것이든 즉흥적인 것이든 중요하지 않다. 실행으로 신뢰를 얻었다는 게 핵심이다.

총수의 품격은 상승작용만 일으키는 게 아니다. 공든 탑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는 대한항공에 떨칠 수 없는 흑역사로 기록된 ‘땅콩회항’이다. 그 사건 이후에도 한진그룹 총수 일가가 몇 년 동안 일으킨 크고 작은 문제들은 수많은 소비자에게 환멸을 줬다. 대한항공 임직원이 현장에서 차근차근 쌓아온 국적기의 품격은 총수 일가의 품위 없고 무책임한 행동들로 천천히 무너졌다. 지금은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한진그룹의 브랜딩은 총수 일가 탓에 진작에 매끈한 모습을 잃었다. 남양유업도 다시 한번 자사의 브랜딩에 흙탕물을 끼얹었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경찰에 입건되면서다. 경쟁사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2009년), 경쟁 제품에 대한 부정적 광고 논란(2010년), 대리점주에 대한 갑질(2013년), 조카의 마약 복용(2019년)까지 일련의 사건에 흑역사를 하나 더 얹었다. 업계 1위였던 남양유업은 이 과정에서 2위로 내려앉았다.

홍보대행사를 동원해 맘카페 등에서 경쟁사를 악의적으로 비방한 최근 혐의는 ‘반성하지 않은 남양유업’이라는 부정적 브랜딩을 덧입혔다. 법적 시시비비를 엄밀히 가리기 전이고, 홍 회장이 직접 비방글을 쓰지는 않았겠지만 반응은 싸늘하다. 과거를 반면교사 삼는 대신 비슷한 잘못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오너의 문제’라는 비판이 곳곳에서 나온다.

브랜딩은 숫자로 나타낼 수 없다. 하지만 그 영향은 숫자로 확인된다. 남양유업이 만년 2위로 떨어진 것, 메가 히트 상품이 많지 않아도 오뚜기 실적이 꾸준히 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영상과 이미지와 소셜미디어 시대에 총수의 품격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시대를 읽고 적응하는 총수의 노력이 긍정적인 기업 브랜딩으로, 그렇게 구축된 브랜딩이 기업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걸 더 많이 목격하고 싶다.

문수정 산업부 차장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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