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참 신인가, 거짓 신인가… 예배는 전쟁이다

국민일보

[칼럼] 참 신인가, 거짓 신인가… 예배는 전쟁이다

김성국 목사의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12>

입력 2020-05-19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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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불의 선지자 엘리야의 사자후가 갈멜산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렇다. 예배는 전쟁이다. 참 신을 섬길 것인가 거짓 신을 섬길 것인가의 가장 치열한 전쟁터가 바로 예배인 것이다. 마귀는 대담하다. 예수님에게도 거짓 신을 예배하라고 유혹했으니 말이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 4:8~9)

성경은 예배전쟁사요, 인류의 역사도 영적으로 예배 전쟁의 역사다. 오늘날도 그 전쟁이 계속되는 것은 거짓 신들의 약속이 매우 현실적이고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그토록 빼앗았던 바알만 해도 그러하다.

바알은 비와 구름을 몰고 다니며 농사에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극심한 가뭄이 있던 아합왕의 때에 사람들은 바알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바알은 힘도 있고 다산(多産)에도 관여한다고 생각했다. 바알은 이렇듯 자본과 권력과 정욕이라는 인간의 현실에서 가장 매혹적인 것들을 약속하는 거짓 신이다.

이런 거짓 신을 예배한 자들은 어떻게 됐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브올(브올의 바알)에서 정욕의 신 바알을 따라 음행했을 때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민 25:1~5) 바알의 선지자들이 갈멜산에서 자본의 신 바알에게 부르짖다가 죽임을 당했다.(왕상 18:40) 요시야 왕 때에 권력의 신 바알에게 제사했던 자들에게 남은 것은 그들 무덤 위에 뿌려진 우상 가루였다.(대하 34:4)

하나님과 더불어 신의 자리를 겨루려던 다른 모든 신은 바알의 아류들뿐이다. 잠시의 쾌락을 약속했던 모든 거짓 신들은 그들의 예배자들을 영원한 멸망으로 이끌지만, 구원을 약속하시는 유일한 참신 하나님은 그의 예배자들을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신다.

예배의 자리에 견고한 진(陣)처럼 자리 잡은 거짓 신을 몰아내는 싸움 없이는 참 신께 예배드릴 수 없다. 예배 전쟁에서 거짓 신과 싸울 무기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회개다.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정욕의 바알과 자기의 높은 지위를 이용해 거짓과 살인을 자행했던 권력의 바알이 하나님보다 크게 보였던 다윗. 그가 진정한 예배자로 돌아서는 데 가장 먼저 필요했던 것은 통회 자복하는 회개였다.

“하나님이여…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시 51:1,17) 예배 전쟁의 승리는 놀랍게도 회개에 있다.

예배 전쟁을 이기게 하는 무기가 또 하나 있다. 거짓 신을 예배하라는 유혹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내세우셔서 이기셨다. 거짓 신은 정확한 말씀이 있는 예배의 자리에서 물러간다. 말씀이 흐릿했던 하와는 마귀를 이길 수 없었다.

예배에서 다른 것을 붙잡지 말자. 예배에서는 진리만 붙잡아야 승리한다.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 하나…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전쟁은 승리 아니면 패배다. 얼마 전 비무장지대에서 우리 군 감시초소를 향한 북한군의 총격이 있었다. 우리 군이 즉각 대응 사격을 시도했으나 격발되지 않았다고 한다. 총을 미리 점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배 전쟁에서 승리하길 원하시는가. 회개와 진리라는 두 개의 강력한 무기가 녹슬지 않게 하자.

(미국 퀸즈장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