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디자인한 마스크, 뉴욕 경찰에게 전하다

국민일보

사랑으로 디자인한 마스크, 뉴욕 경찰에게 전하다

재미교포 디자이너 채혜진씨, 경찰관들 위해 얼굴형에 맞게 디자인해 공급

입력 2020-05-1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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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혜진씨(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지난달 29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 경찰서를 찾아 마스크를 전달한 뒤 경찰관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채씨 오른쪽은 딸 한혜경씨다. 채혜진씨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급속도로 확산되던 지난달 중순 미국 뉴욕 도심에 전에 없던 광경이 펼쳐졌다. 경찰관들이 검정색 마스크를 낀 채 순찰을 도는 모습이었다. 마스크에는 뉴욕 경찰국을 뜻하는 영어 알파벳 NYPD가 노란색 자수로 새겨져 있었다. 이 마스크에는 한 유아용품 디자이너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다.

‘뉴욕 생활 34년 차의 평범한 교포 아줌마’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채혜진(51·뉴욕 리디머교회)씨는 지난 15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9·11테러, 허리케인 피해, 금융위기 등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 왔는데 바이러스로 인해 손 쓸 겨를 없이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에 충격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처음 겪는 위기 앞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디자이너로서 달란트를 활용할 수 없을까’ 고민했는데 보호장비 없이 순찰을 돌다 코로나19에 감염돼 쓰러지는 경찰관들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고 회상했다.

미국 내 신규 확진자가 하루 4만여명까지 치솟으며 최대치를 기록하던 당시 뉴욕은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큰 지역이었다. 코로나19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는 동안 마스크, 방호복 등 의료용품 기부는 병원 종사자들에게 집중됐다. 이 무렵 뉴욕 경찰국은 전체의 약 15%인 5600여명의 경찰이 코로나19로 결근하며 ‘치안 공백’ 위기를 맞았다.

‘뉴욕 경찰관들에게 마스크를 나눠주자’고 결심한 채씨는 한국에서 면마스크를 공수해 전달해 볼 요량으로 샘플 마스크를 들고 경찰서에 찾아갔다가 뜻밖의 장애물을 만났다. 미국인과 한국인의 얼굴형이 달라 마스크가 코에 맞으면 턱이 안 맞고, 귀까지 접혀 도저히 오래 쓸 수가 없었다. 채씨는 미국인 얼굴형에 맞게 직접 마스크를 디자인하기로 했다. 그의 아버지가 은퇴 후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세운 재단에서 지원받은 1만2000달러가 마중물이 됐다. 채씨는 그날로 평소 자신이 디자인한 제품을 생산해온 대구 공장에 연락을 취했다.

“유아용 이불을 제작해 유럽, 일본에 납품하던 공장이 저 때문에 마스크 공장으로 바뀌었죠. 마스크 수출이 가능한 한도 내에서 원단에 특수 항균 처리를 하고 빨아서 재사용할 수 있는 질 좋은 마스크를 만드는 게 목표였습니다. 원공정보다 봉재라인을 늘려야 하고 디자인 변경도 수차례 요청해 부담이 컸을 텐데도 마스크 지원의 취지에 공감해 준 공장장님이 묵묵히 제작에 힘써 주셨어요.”

채혜진씨가 전달한 마스크. 특수 항균 처리된 마스크에 NYPD 로고를 자수로 새겼다. 채혜진씨 제공

그렇게 제작한 마스크는 채씨가 거주하는 브루클린을 중심으로 퀸즈, 맨해튼 지역 내 경찰서에 근무하는 경찰관들에게 전달됐다. 남편과 딸은 마스크를 전달하러 경찰서에 방문할 때마다 든든한 조력자가 돼줬다. 현재까지 전달된 마스크는 4000장, 한국에서 미국으로 1200장이 추가로 배송 중이다. 지금도 대구 공장에선 마스크가 계속 제작되고 있다. 지난달 초 개설한 ‘NYPD를 위한 마스크 나눔 기부’ 페이지에도 시민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1만3000달러의 성금이 더 모였다.

채씨는 “우리가 만든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순찰하는 경찰을 볼 때마다 뿌듯하다”며 “하나님께서 위기의 때에 크리스천으로서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목표는 3만8000여 뉴욕 경찰관 얼굴에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제작된 마스크를 씌우는 것이다.

“미국엔 여전히 마스크 착용이 대중화되지 않은 곳이 많아요. 최근에는 주지사 사무실에서도 요청이 왔습니다. 주 공무원들의 마스크 착용이 시민들에게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었어요. 한국으로부터 전달된 마스크가 공포에 눌린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줬으면 좋겠습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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