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작은 천국 공동체… 자녀가 회복되려면 부모 먼저 회복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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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은 작은 천국 공동체… 자녀가 회복되려면 부모 먼저 회복돼야

정광재 목사의 형상회복 <5> 형상 회복은 가정의 회복

입력 2020-05-2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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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재 서울 다메섹교회 목사(왼쪽)가 2013년 이스라엘 요단강에서 예배 후 세례를 베풀고 있다.

가정은 하나님이 세상에 만드신 소중하고 복된, 작은 천국 공동체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이 되고, 힘이 되며, 필요가 되고, 의미가 되는 곳이 가정이다. 해처럼 따사롭고 포근한 아내, 깃발을 세운 군대같이 당당하고 위엄 있는 남편, 달같이 아름다운 아이들이 하모니를 이루는 곳이 가정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비전과 열망이 담긴 가정이 흔들리며 무너지고 있다. 하나님의 아픔이고 고통이며 절규다. 사랑의 공동체가 돼야 하는 가정에서 사랑이 훼손되고 핵심 가치가 변질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심지어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목회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많은 사람이 가정의 문제로 아파하고 있으며, 회복되길 간절히 원한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비슷했다. 가정의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비뚤었다는 점이다.

무너진 가정을 지목하고 가문의 저주를 끊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는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가정의 문제는 조상 탓, 다른 사람 탓도 아닌,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지 못한 나 때문이다. 전적으로 본인의 문제로, 상대방으로부터 주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가정에 화목이 없고 소통이 막히며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하나님은 문제와 사건을 통해 당신을 바라보고, 자신조차 알지 못하던 자아의 모습과 죄악을 발견하길 원하신다. 문제를 수정·보완해서 형상을 회복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신다. 내 문제를 깨닫고 내가 변화돼야 가정의 문제가 해결되고 관계가 회복된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면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그 은혜가 흘러간다.

무엇보다 자녀가 회복되기를 원하는 가정은 부부관계부터 회복돼야 한다. 부모가 가정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나무의 뿌리가 튼튼해야 많은 열매를 맺듯 가정의 회복을 위해 부부의 관계 회복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매년 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부부 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화목한 가정을 일구자는 취지에서 제정됐다. 크리스천은 특히 부부의 날을 맞아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 부부 관계가 아름답게 회복되도록 소망해야 한다.

영적으로 봤을 때 부부는 서로의 ‘광야’가 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한 후 광야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됐듯 부부도 서로의 광야가 돼 아름다운 주님의 신부로 세워져야 한다.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듯 부부도 서로의 허물과 부족을 보고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관계가 돼야 한다. 참사랑으로 섬김과 희생을 배우고 서로의 ‘에덴’이 돼야 한다.

부부는 아름다우나 가시가 돋은 장미꽃처럼 감추어진 상처의 돌기가 서로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부딪치지만 깨어지면서 가시도 무뎌지고 꽃이 된다는 의미다. 부부는 담쟁이덩굴과 흙담 같다. 담쟁이덩굴처럼 볼품없는 흙담을 잎으로 가려 줘야 한다. 힘이 없어 오를 수 없는 담쟁이덩굴에 자신을 타고 높이 오르도록 흙담이 돼야 한다. 서로의 필요가 되고 의지가 돼야 한다.

부부는 독수리가 두 날개의 균형을 잡고 높이 비상하듯 하나 돼 연합해야 한다. 수저처럼 다른 기능으로 같은 일을 해야 한다. 밥을 먹는 숟가락, 반찬을 집는 젓가락처럼 각자의 부름으로 조화를 이루고 하나님의 한 작품이 돼야 한다.

부부는 동전의 양면처럼 외형은 다르지만 같은 가치를 지닌 존재다. 서로 역할이 다를 뿐 상하 계급 배열이 아니라 좌우 평등 가치로 만들어진 존재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할 때 영적 권세를 힘입고 가정을 지킨다. 남편은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할 때 세상을 이긴다. 아내가 남편 안에서 해가 될 때 남편은 세상에서 빛을 발한다.

성경적으로 형상이 회복된 가정에는 생수가 흘러넘친다. 가족 구성원, 주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가 돼 기쁨과 화목을 준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는 은혜가 있다.

형상이 회복된 아름다운 가정으로 만들고 싶은가. 각 가정을 너무 잘 아시는 하나님이 오늘도 그분의 커리큘럼에 따라 각각의 환경과 문제, 사건과 대인 관계를 통해 말씀하신다. 수정·보완할 점을 깨닫게 해 훈계하신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형상 회복의 은혜를 누려야 한다.

가정의 회복은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다. 우리 가정은 아가페의 사랑으로 상대를 세우고 아름다운 연합을 이뤄야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하시고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해야 한다.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감사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영적인 가정으로 위치를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은 바로 ‘나’부터 시작돼야 한다.

▒ 성령께서 인도하는 목회
11살에 겪은 인권 유린, 복지원 원장이 장로라니…

부산 형제복지원 수용자들이 1980년대 시설 안에서 강제 노동을 하고 있다. 형제복지원사건피해생존자모임 제공

1981년 늦봄부터 시작된 형제복지원 생활은 끔찍한 지옥 같았다. 형제복지원에 잡혀 와 신체검사를 받은 그 시간부터 인권이란 없었다. 남녀노소가 한 곳에서 알몸으로 검사를 받았다. 성인 여자도 같은 공간에서 여자 관리자 없이 강제로 옷을 벗어야 했다. 어린 나이에 두려움과 공포심이 앞섰다.

검사가 끝나자 형제복지원이란 글자가 새겨진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대열에 맞춰 신입 소대에 입소했다. 신입 소대는 7~10일 교육을 받고 다른 소대로 편입되기 전 첫 과정이었다.

중대장, 소대장, 서무, 조장, 선도부는 신입 소대 내무반에 몽둥이를 5~6개 놓고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원생들을 꿇어 앉혔다. 양반다리로 앉혀 놓고 기합과 폭행을 가했다. 다리에 쥐가 나 몸을 살짝만 비틀어도 맞았다. 정자세로 앉아 있어도 ‘꼼짝 않고 있었다’며 두들겨 맞았다.

형제복지원은 28소대까지 있었다. 영아소대, 아동소대를 비롯해 정신병동까지 3000명이 넘는 수용자들이 있었다. 조직은 피라미드 형태로 관리했다. 새벽 4시 반이면 어김없이 기상하고 소대마다 점호를 했다. 도망간 사람이 있는지 인원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나에게 점호 시간은 늘 긴장과 떨림의 연속이었다.

약 70명 되는 소대원은 자기 차례가 되면 번호를 복창하는데 번호를 잘못 말하거나 헤매기라도 하면 소대장의 기분에 따라 실수한 사람만 기합을 받거나 소대 전체가 2시간 이상 얼차려를 받고 구타를 당했다.

그곳에 있던 많은 사람이 트라우마로 자살을 시도하거나 정신 장애를 겪고 있다. 가난한 삶도 면치 못했다. 피해자 중 4분의 3 가량은 기초생활보장수급자가 됐다.

놀라운 사실은 구타와 폭행을 일삼았던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이 교회 장로였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이 박 원장의 처남이 목사로 있던 복지원 내 새마음 교회로 끌려왔다.

형제복지원에선 하나님이 존귀하게 만드신 인간의 존엄성이란 없었고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행위만 쌓여갔다. 박 장로의 온갖 악행과 처남 목사의 묵인으로 상처받았던 원생들은 대부분 하나님을 원망하고 교회를 등지고 있다. 정말 잘못된 일이다.

지도자가 한번 잘못하면 많은 사람이 상처받고 교회를 떠난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영혼을 실족시킨 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 죄악을 반드시 물으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지 않겠는가.

형제복지원 문제는 박 장로와 복지원 목사의 문제로만 봐야 할 것이 아니다. 국가 차원에서 묵인했던 문제와 함께 당시 상처받은 자들의 마음을 안고 이해하며 기도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원생들이 목사와 장로에게 상처받았기에 이 상처를 오늘날 목사, 장로와 성도들이 풀어줘야 한다. 볼품없는 영혼일지라도 하나님이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이 시대 크리스천은 영혼 회복의 사명이 있다.

형제복지원은 점호를 중요시했다.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도망가지 않도록 잠그고 새벽 5시에 소대문을 열었다. 그때 나는 17소대 철공소대에 있었다. 내가 속한 소대는 2층 침대를 만들었는데, 쇠 막대를 용접했다. 저녁이 되면 다시 점호하고 밖으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자물통 2개를 채웠다. 그렇게 철창 건물 안에서 잠을 잤다.

형제복지원의 일상은 강제 노역과 구타와 폭행의 나날이었다. 감옥보다 더 힘든 곳이었다. 차라리 교도소에 있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당시 나는 11살이었다. 가족들과 김밥을 싸서 놀이공원으로 나들이 갈 나이에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아닌 철창으로 둘러싼 형제복지원에서 암흑의 시간을 보냈다. 마음 한편으로는 찾아올 아버지를 기다리며 그곳의 생활에 휩쓸려 갔다.

정광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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