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자적 물길 걸어 싱그러운 신록 속으로…

국민일보

유유자적 물길 걸어 싱그러운 신록 속으로…

옛 성현 발자취 스민 경북 ‘안동선비순례길’

입력 2020-05-20 18:30 수정 2020-05-20 23:46
‘선비의 고장’ 경북 안동시 예안면 의촌리에서 드론으로 내려다본 시사단과 강 건너 도산서원. 시사단 바로 앞에 유채꽃밭과 청보리밭이 노란색·초록색 물결을 이루며 고향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다.

경북 안동은 선비의 고장으로 일컬어진다. 의(義)와 예(禮)를 쌓는 것은 기본이고, 때로는 자신의 생명까지 던지며 헌신한 사람들이 손으로 꼽기 어려울 만큼 많아서다. 안동시 도산면·와룡면·예안면 일원에 ‘안동선비순례길’이 2017년 열렸다. 안동호의 비경을 볼 수 있는 관광명소다.

선비순례길은 안동호반을 따라 9개 코스, 91㎞로 조성된 자연 친화적인 탐방로이다. 길 이름에 걸맞게 서당·서원·향교·고택 등을 만나고, 조선 중기 대학자 퇴계 이황(1501∼1570) 등 옛 선비들의 흔적도 접할 수 있다. 모두 걷기 어려우면 몇 개 코스만 선택하면 된다.

순례길을 여는 1코스는 ‘선성현길’이다. 오천리 군자마을에서 시작해 선성현문화단지를 거쳐 월천서당에 이른다. 출발지 오천유적지는 광산 김씨 예안파가 약 20대에 걸쳐 600여 년 동안 살아온 마을이다.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한 문화재를 현재의 자리로 원형 그대로 옮겼다. 수몰 전 낙동강으로 흘러든 물이 맑아 물 밑에 깔린 돌이 검게 보여 ‘까마귀 오’(烏)자를 썼다고 한다.

군자마을의 백미는 탁청정(濯淸亭)이다. ‘수운잡방’의 저자 김유가 1541년(조선 중종 36)에 세운 정자로, 영남지방 개인 정자로는 구도가 가장 웅장하고 우아하다는 평이다. 정자 이름은 굴원의 ‘어부사’에서 따왔다. 편액은 한석봉의 글씨로, 복제품이다. 원본은 한국국학진흥원에 보관돼 있다. 침락정과 후조당 등 볼거리가 많다.

군자마을 뒷산을 넘어 안동호 수변을 따라가면 도산면 서부리 예끼마을에 닿는다. ‘재주 예’(藝)자와 재능·소질을 뜻하는 우리말 ‘끼’를 합쳐 만들었다. 예술가들이 마을에 들어와 터전을 잡으면서 골목골목에 작은 갤러리 등을 내면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마을이 됐다. 주변에 평산 신씨 송곡파의 종택인 송곡고택, 예안향교, 선성현문화단지 등이 자리한다.

잔잔한 안동호 수면에 부드러운 곡선으로 휘어져 있는 ‘선성수상길’

이 마을에서 선비순례길의 백미인 ‘선성수상길’이 시작된다. 안동호 수면 위에 길이 1㎞, 폭 2.75m 규모로 설치된 선성수상길은 수위 변화에도 물에 잠기지 않도록 부교(浮橋)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흔들림이 크지 않아 편안하게 물 위를 걸으며 안동호의 절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수상길 한가운데 수몰 전 예안초등학교가 있던 자리에 학교 교실을 모티브로 한 작은 쉼터가 있다. 길은 안동호반자연휴양림과 공사중인 한국문화테마파크를 지나 월천서당에 닿는다.

월천서당은 월천 조목(1524~1606) 선생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당이다. 월천은 어려서부터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공부한 수제자로, 퇴계학단의 중추적 인물이다. 안동호 건너편 부포선착장과 멀리 계상고택이 있는 역동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2코스 ‘도산서원길’이 시점된다. 퇴계 선생이 만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도산서원을 지나 퇴계종택까지 11㎞ 구간이다. 스승과 제자가 만나는 사제의 길로, 퇴계의 숨결이 살아 있다.

도산서원에 이르면 낙동강 건너편 의촌리 강가에 퇴계의 학덕과 유업을 기리기 위해 도산별과가 치러졌던 시사단이 있다. 넓은 들판에 청보리밭과 유채꽃밭 등이 펼쳐져 고향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퇴계종택은 1982년 경북도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됐다. 원래 가옥은 없어졌으며, 현재 가옥은 퇴계 13대 후손인 하정공 이충호가 1926~29년 새로 지은 것이다. 종택의 크기는 34칸으로 ㅁ자형이다.

원촌마을 입구 이육사 문학관 앞에 설치 된 동상과 ‘절정’ 시비.

3코스 ‘청포도길’은 퇴계종택에서 출발해 퇴계 선생의 묘소를 지나 ‘광야’ ‘청포도’를 노래한 저항시인 이육사의 고향 원촌마을을 거쳐 단천교까지 이르는 7㎞ 구간이다. 이육사는 퇴계 이황의 14세손이다. 원촌마을 초입에 이육사 문학관이 있다. 주변에 이육사 동상과 그의 대표작 ‘절정(絶頂)’이 새겨진 시비가 반긴다.

원촌은 퇴계 선생의 5세손인 원대처사 이구가 정착하면서 ‘세간 명리는 뜬구름으로 여기고 속진과 치욕은 멀리한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이육사가 태어나고 묻혀 있는 마을이다. 마을 이름은 1995년에 원천리로 바뀌었지만 마을의 내력을 알리는 안내판에는 여전히 원촌마을이라 쓰여 있다.

▒ 여행메모
월천서원~부포선착장 도선 운항
선성현문화단지·수졸당 ‘한옥체험’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안동선비순례길을 찾는다면 중앙고속도로 영주나들목에서 빠지는 것이 가깝다. 안동 시내에서 간다면 35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15㎞ 이상 가야 한다.

선비순례길 1·2코스에서 안동호 건너편으로 가장 가깝게 가는 방법은 도선을 이용하는 것이다. 월천서원 앞 선착장에서 맞은편 부포선착장까지 수시 운항한다. 요금은 승객 100~300원, 차량 2000~5000원이다. 10분 정도 소요된다.

도산서원 바로 건너편 시사단이 있는 의촌리로 가려면 주진교를 건넌 뒤 예안면소재지를 지나는 등 30㎞ 이상을 가야 한다. 40분가량 소요된다. 가는 길에 봉화 금씨의 성성재 종택과 기름진 들과 더불어 천년세월을 견딘 조선 중기 때의 누각인 ‘부라원루’를 볼 수 있다.

예안면 부포리 관수대에서 본 계상고택.

의촌리와 가까운 곳에 계상고택이 있다. 한국문화테마파크 공사 현장 인근 언덕에서 강 건너편을 보면 청보리밭 일렁이는 곳이다.

선성현문화단지와 퇴계 이황 묘소 바로 아래 있는 수졸당 등에서 한옥체험이 가능하다. 선성수상길 건너편 안동호반자연휴양림에서도 묵을 수 있다.





안동=글·사진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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