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선교지 지키고 싶어”

국민일보

“걷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선교지 지키고 싶어”

‘방파선교회’ 산증인 김영곤 목사 삶과 신앙

입력 2020-05-20 00:11 수정 2020-05-2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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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곤 목사가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슈페리어타워에서 열린 ‘제7회 슈페리어 대상 시상식’ 현장에서 자신의 삶과 선교 여정을 소개하고 있다. 송지수 인턴기자

‘나는 언제 어디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을지 모른다. 내가 살아있을 때 기도하면서 가족에게 이 유언을 남겨 놓는다.’

팔순을 넘긴 선교사는 늘 갖고 다닌다는 A4 용지 한 장을 자신의 그림자와 같은 서류가방에서 꺼내 보여줬다. 종이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라는 제목 아래 유언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조화는 사절하고 간소하게 장례할 것, 수의 대신 평소 입던 양복을 입혀줄 것, 좋아하는 성경구절과 찬송가, 소장 기념품과 사후 기념품의 보관 장소 등이 나열된 유언장은 작성된 날짜와 이름 석 자로 끝을 맺었다.

유언장의 주인공은 23세에 시작한 목회자의 길을 60년째 걷고 있는 김영곤(82) 목사다. 그는 사역 60년 중 42년을 방파선교회를 위해 헌신했다. 방파선교회 태동 때부터 42년간 서기 총무 사무총장을 맡아왔다. 2017년 직함을 내려놓은 뒤에도 선교지에서의 사역을 멈추지 않아 ‘뼛속까지 선교사’로 불린다.

선교와 봉사에 헌신한 이들에게 수여하는 ‘제7회 슈페리어 대상’ 시상식의 선교부문 수상자로 지난 15일 방파선교회를 대표해 참석한 김 목사를 현장에서 만났다. 그는 1975년 고아 출신인 고 정성균 선교사와 함께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말씀을 붙들고 선교단체를 조직했던 얘기부터 꺼냈다.

“정 선교사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이슬람 국가인 방글라데시로 선교를 나가면서 동기들 몇 명이 뜻을 모았습니다. 한 달 치 월급이었던 2000~3000원씩 모으고 주변에 후원을 요청했지요.”

사역 5년 후 미국에서 선교훈련을 받고 방글라데시로 다시 입국하려던 정 선교사는 과거 사역 중 170여명에게 세례를 준 것이 탄로나 입국을 거절당했다. 선교지가 방글라데시에서 파키스탄으로 옮겨진 전환점이었다. 정 선교사가 1984년 파키스탄에서 순교할 때까지 방파선교회는 10년간 교회개척, 난민수용소 돌봄, 교육선교 등 활발한 사역을 펼쳤다.

지난해 6월 김 목사(앞줄 왼쪽 두 번째)가 아내 임서희 권사(앞줄 왼쪽 첫 번째)와 피지 리빙스톤교회를 방문해 성도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김영곤 목사 제공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의 앞글자를 따 ‘방파선교회’로 사역을 펼쳤지만, 두 나라에 떨어진 선교의 밀알은 세계 열방으로 퍼져나갔다. 지금까지 30개국에 60여 선교사 가정을 파송해 교회 500개, 학교 50개를 운영하며 매년 2만명 넘는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김 목사는 “사역의 지경이 넓어지면서 1985년부터 한글 이름은 그대로 둔 채 한자로 ‘나라 방’ ‘심을 파’를 썼다”고 설명했다.

그의 선교 열정은 가족들에게 그대로 전수됐다. 컴퓨터 한 대 없이 사역하던 1970년대에 당시 초등학생이던 4남매와 함께 작은 밥상 하나에 둘러앉아 ‘라면땅’을 나눠 먹으며 손수 전국교회에 띄우는 선교편지를 만들었다. 투정 한번 없이 선교 사역에 동행해 온 가족들은 지금도 김 목사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그의 가족 이름으로 선교지에 세운 교회만 4곳이다.

방파선교회 사무총장 이임 후에도 최근까지 북미 중미 남미 11개국의 선교지를 방문하며 사역을 펼쳐 온 김 목사의 꿈은 걷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선교 현장을 지키는 것이다.

“선교지를 순회하며 선교사들이 울고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천국을 경험합니다. 주님 주신 생명 다할 때까지 지상명령을 수행해야지요.”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