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안에서 구경하는 듯한 야구장 풍경

국민일보

지구 안에서 구경하는 듯한 야구장 풍경

갤러리룩스 ‘이규철 유작전’

입력 2020-05-23 04:06
이규철, ‘공간과 시지각 1990-1’, 1990년. 갤러리룩스 제공

움푹 팬 반구(半球) 형태 안에 야구장 사진을 조각조각 이어 붙였다. 경기가 한창인 운동장은 멀리 보이고, 관중석 사람들은 점점 커져 코앞에서 보는 듯 입체감이 있다.

요절한 사진작가 이규철(1948∼1994) 유작전이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 갤러리룩스에서 열리고 있다. 이규철은 조각과 사진의 접점을 탐구하며 입체와 평면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적 작업으로 1980년대 후반 사진계에 혜성처럼 등장했었다. 홍익대에서 조각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사우디아라비아 주재 미국 기업에서 행정 업무 및 영상 기사로 일하며 평범한 삶을 살았다. 그러다 35세 때 미국 매사추세츠 미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다시 예술세계로 귀환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새로 만났다.

그는 세상의 풍경을 찍었다. 하지만 카메라의 눈과 달리 인간의 눈은 여러 시점에서 대상을 파악한다. 평면의 사진을 인화하는 것은 우리가 대상을 보는 방식과 다르다. 그걸 의식해서일까. 작가는 여러 시점에서 본 풍경을 조각조각 오린 뒤 움푹 들어간 반구(半球) 형태, 혹은 둥근 지구의(地球儀) 형태 모양의 틀에 붙인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사진 조각’이야말로 진실에 가까운 셈이다. 1988년 관훈미술관 개인전에서 첫선을 보인 ‘사진 조각’은 본다는 것은 무언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결과인 셈이다.

전위적인 작업으로 신선한 자극을 주던 작가는 54세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짧은 생애 동안 섬광처럼 번득이며 활동했던 그를 기리는 지인들이 전시를 꾸렸다. 조각가 금누리, 제자인 미대 출신 소설가 주수자, 사진작가 배병우, 타이포그라퍼 안상수 씨 등이 함께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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