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언약에 기초한 부부의 세계

국민일보

[시온의 소리] 언약에 기초한 부부의 세계

입력 2020-05-2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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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가 된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끝났다. 완벽한 부부를 꿈꾼 여성이 남편의 외도로 무너지며 깊은 상처를 받는다. 아들의 상처는 더 심각해서 보는 이의 마음을 서글프게 한다. 드라마는 바람난 남자의 몰락과 부부 사이의 징글징글한 소위 ‘사랑과 전쟁’ 이야기다. 여기에 미묘한 전개와 내면 묘사로 몰입감이 높았다.

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은 동시에 두 명을 사랑한다는 한 남자를 만난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애를 만족시키는 이기심의 발로”라고 주장했다. 이 말대로 드라마에서 김희애는 전남편에 대해 고발한다. “자신을 우러러보고 챙겨줄 때 그는 사랑을 느끼지. 하지만 그는 자유로운 영혼이고 보살핌이 오히려 통제받는 거라고 느낀 거야.”

대학 캠퍼스에서 ‘닭살 커플’로 유명했던 한 부부가 이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다. 이혼 사유는 남자의 바람이었다. 지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이들이 사랑한 것은 인격체가 아니라 연애 감정이었는지 모른다. 시간이 지나 낭만의 유통기한이 지나면 다시 로맨스를 갈구하며 다른 상대를 찾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다른 사람과 밀착하고 싶은 환상이 있다. 너무 강한 밀착은 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불러일으킨다. 그 순간 상대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다. 부부생활 역시 이런 밀착과 경계 욕구의 진자운동인 셈이다.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근대에 들어 결혼은 자신의 선택과 낭만적 사랑으로 숭고해졌다. 여기서 사랑이 사라진다면 어떨까. 결혼의 지속성도 중단된다. 지금도 여러 부부가 생활 속에 함몰된 사랑으로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요즘은 결혼이 인생에서 필수가 아니라고 여기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근대사회가 구축한 합리적이며 낭만적인 부부의 세계가 붕괴되고 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모든 관계성을 왜곡시킨다. 대중매체가 제공하는 욕망에 함몰된 현대사회에서 부부관계도 점차 시장화돼 간다. 결혼시장 섹스시장 사랑시장까지. 이쯤 되면 “결혼은 미친 짓”이다.

대중매체에 자주 비치는 이상적인 커플이 있다. 최수종 하희라 부부, 차인표 신애라 부부, 션 정혜영 부부가 대표적이다. 기념일을 챙겨 이벤트를 하고 사랑 가득한 언어를 쓰는 모습으로 낭만적 사랑의 대명사가 됐다. 하지만 이들은 기념일에 맞춰 기부하고 입양아의 부모가 돼 자녀를 지극히 존중하는 모습도 보인다. 낭만을 넘어 두 사람의 확장된 세계를 보여준다.

이들 부부는 모두 독실한 그리스도인이다. 이 부부의 세계는 언약에 기초한다. 처음엔 낭만적 사랑으로 시작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언약으로 그 지평이 넓어지고 뿌리는 단단해졌다. 이들이 함께 만든 열매는 더 아름답다.

가장 숭고한 신의 사랑이라는 ‘아가페’. 이 사랑은 인간의 삶에 성육해 우리 관계를 거듭나게 한다. 우리의 에로스는 아가페로 거듭나며, 아가페는 우리의 에로스로 비로소 알 수 있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말한 대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좋은 관계를 만드는 능력”이다.

나는 노부부가 손을 잡고 산책하는 모습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본다. 이들 부부의 세계가 늘 평탄하지는 않았을 터다. 그럼에도 이들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세상이 찬미하는 낭만적 사랑의 거품이 걷힌 후의 진한 우정이 느껴진다. 서로의 가면은 벗어버리고 관계의 깊이와 서사의 넓이를 확장하는 게 진짜 사랑의 모습이다. 이것이 내가 이루고 싶은 ‘부부의 세계’다.

윤영훈(성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