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안보장사까지 따라할 필요는 없다

국민일보

[데스크시각] 안보장사까지 따라할 필요는 없다

남혁상 정치부장

입력 2020-05-21 04:02

국제사회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판하는 다양한 논리 중 하나는 그가 외교안보 이슈에 장사꾼 셈법을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거의 모든 사안에 돈의 논리를 적용했다. 무역은 물론 나토 동맹국들을 향해 방위비 부담이 너무 적다고 일관되게 압박했다. 노골적인 압박과 회유, 때로는 블러핑까지 동원했다. 미국이 ‘부자 나라들(wealthy countries)’을 공짜로 보호해 주는 만큼 이 나라들이 돈을 더 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여러 번 나왔다. 사실 미국 보호 덕분에 많은 나라가 부자가 됐다는 주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수십년 전부터 일관되게 주장해왔던 논리다.

한국도 그 대상에서 예외는 아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도 이른바 ‘가성비’를 끌어왔다. 연합 군사훈련 중단 필요성을 거론하면서 “돈이 많이 드는 비싼 전쟁게임”이라고 표현했다.

주한미군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협상도 마찬가지다. 거래만큼은 천부적인 소질을 지닌 그는 양국 협상 과정에서 여러 차례 “한국과 합의했다” “한국이 큰돈을 주기로 했다” 등 많은 말을 쏟아냈다. 지난해 1조389억원의 5배가 넘는 약 50억 달러 수준의 분담금이 필요하다고도 한 것은 자신의 저서 ‘거래의 기술’에서처럼 ‘먼저 크게 지르고 보는’ 협상 양태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이런 특유의 협상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많은 것을 얻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한 협상 파트너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은 대의와 명분, 인내, 신중함이다. ‘트럼프식 안보장사’에 대한 협상뿐만 아니라 어디서나 통용되는 상식이다. 그런 상황에서 총선 전 청와대발로 뜬금없이 흘러나온 13% 인상 수준의 방위비 협상 타결 임박 소식은 많은 혼선을 야기했다. 그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에서 코로나19 진단키트 지원 문제를 논의했고 이것이 방위비 협상에 플러스 요인이 됐다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 얘기는 청와대 고위 당국자가 자신의 낙관적 희망과 기대, 섣부른 전망을 섞어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는 즉각 “협상은 진행 중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들이 더 기여해야 한다는 기대를 분명히 했다”는 입장을 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경구처럼 협상은 순탄하게 나가다가도 작은 지점에서 막히고 오히려 뒤로 갈 수 있다는 건 기본상식이다. 방위비 협상 역시 마찬가지지만, 청와대는 몇조원 대 예산이 걸린 문제를 확정 전에 미리 흘려 기대감만 부풀린 꼴이 됐다. 청와대는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더 많은 돈을 내기로 했다”고 한 직후 “모든 게 합의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합의되지 않은 것이라는 게 협상의 기본원칙”이라고 했다. 청와대 고위 당국자 얘기를 청와대가 한 달만에 스스로 반박한 셈이 됐다.

이미 4000명이 넘는 주한미군 한국 근로자들의 무급휴직이 이어지고 있지만, 방위비 협상은 올가을 타결도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민감한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섣부른 기대, 홍보성 발표는 더욱 금기사항이다. 특히 방위비 협상을 포괄적 전략동맹 기조하에 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돈의 논리로 접근하는 쪽에 오히려 역공의 빌미를 주거나 레버리지만 강화해줄 뿐이다.

총풍, 북풍에서 보듯 과거 보수 정권이 안보 사안의 정치적 이용을 단골 메뉴로 삼아왔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4년 전 박근혜정부는 해외 북한식당 여종업원 집단 탈북 사실을 총선 직전 전격 발표해 안보 장사라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지금 정부까지 그걸 따라 할 필요는 없다.

남혁상 정치부장 hs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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