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무용수 되려 애써, 극장 열리면 온 힘 다 할 것”

국민일보

“준비된 무용수 되려 애써, 극장 열리면 온 힘 다 할 것”

[인터뷰] 샌프란시스코 발레단 수석무용수로 승급 박원아

입력 2020-05-23 04:06 수정 2020-05-25 02:27
오는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발레단 수석무용수 승급이 결정된 발레리나 박원아의 모습. 입단부터 수석까지 3년만의 초고속 승급을 이뤄낸 박원아는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귀국했다. 샌프란시스코 발레단 제공

발레리나 박원아(20)는 오는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발레단 수석무용수 승급이 결정됐다. 입단 1년 만인 2018년 7월 군무에서 솔리스트로 올라선 그는 다시 2년 만에 수석무용수가 됐다. 입단부터 수석까지 3년밖에 걸리지 않은 고속 승급은 샌프란시스코 발레단 역사에서도 이례적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올해 하반기까지 공연이 취소돼 내년을 기약하게 됐다.

지난달 말 한국에 들어온 박원아는 19일 국민일보와 만나 “코로나19 여파로 극장이 폐쇄된 상황에서 전화로 승급 소식을 들었는데 믿기질 않았다”며 “부담감보다는 기대가 컸다. 빨리 무대에 서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원아는 지난 2015년 선화예고 1학년 때 샌프란시스코 발레학교의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학교 졸업과 동시에 샌프란스시코 발레단의 입단 제의를 받았다. 1933년 설립된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은 미국 최초의 직업발레단으로 정단원만 70여명이다. 아메리칸 발레 씨어터, 뉴욕시티발레와 함께 미국의 빅3 발레단으로 꼽힌다.

그는 “입단 이후 준비된 무용수가 되려고 노력했다”면서 “언제 갑자기 기회가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고 털어놓았다. 예를 들어 수석 무용수들이 주역으로 캐스팅 된 후 솔리스트들은 주역의 부상을 대비해 언더스터디(주역을 대체하는 무용수)로 캐스팅 된다.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의 경우 무대에 서는 제1·2 캐스트까지 리허설이 진행되고 언더스터디인 제3~5 캐스트는 따로 리허설 기회가 없다. 솔리스트 시절 주로 제4~5 캐스트였던 박원아는 “무대에서 리허설 기회가 없어도 혼자서 연습했다”고 말했다.

마침내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공연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던 상황에서 무용수들의 부상이 이어지면서 그가 주역으로 서게 된 것이다. 그는 “운이 좋았다”고 말했지만 노력하는 자세와 일취월장한 기량이 헬기 토마슨 예술감독의 눈에 띄었다. 올해 임기 35년째인 토마슨 감독은 세계 메이저 발레단 가운데 드물게 오랫동안 수장을 역임하고 있는 인물로 단원 선발과 승급에 전권을 행사한다.

사진=권현구 기자

그는 “3월 중순 조지 발란신의 ‘한여름밤의 꿈’ 무대에 오를 때 토마슨 감독님이 (코로나19 때문에) ‘이번 시즌 마지막 공연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면서 “무대가 재개되길 기다리며 샌프란시스코 집에 머물다가 결국 귀국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쉬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지난달 말 한국에 들어온 그는 평택 본가에서 2주간 자가격리를 했다. 그 동안 방바닥에 매트를 깔고 누워서 발레 동작들을 연습했다. 발레단이 제공하는 온라인 클래스는 답답한 시간을 견디는데 큰 도움이 됐다. 미국 시각으로는 오전 10시, 한국 시각으로는 새벽 2시에 강의가 시작되는 탓에 생중계로 볼 수 없었지만 그는 발레, 필라테스, 요가 클래스를 들으며 몸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자가격리가 끝난 지금은 헬스장도 다니며 근력을 다지고 있다. 그는 “녹화본으로 혼자 연습하다 보니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이렇게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은 보유한 레퍼토리들의 영상을 매주 한 편씩 공식 유튜브에 공개하고 있다. 박원아도 휴식 시간에는 온라인으로 발레 공연을 본다. 그는 “객석에서 무용수의 표정이나 숨소리까지 느낄 수 없는데, 영상으로는 섬세한 부분까지 다 담아내서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평소 무대 위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영상 속에서 춤추는 나를 보니 신선한 느낌이 든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발레단의 온라인 공연은 티켓을 구입하고도 실제 공연을 볼 수 없게 된 팬들에게 작은 감사의 선물이다.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은 무용수에게 주급을 주는데, 공연이 없는 지금도 받을 수 있는 것은 후원자들 덕분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공공 지원이 거의 없고 개인 및 기업의 후원과 티켓 마케팅에 의존하는 미국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발레단, 오케스트라, 오페라단 단원들의 상당수가 무급휴직에 들어갔다. 박원아는 “코로나19로 공연이 없는데도 발레단 후원은 오히려 늘었다고 한다”면서 “팬들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극장이 다시 문을 열면 온 힘을 다해 춤추겠다”고 전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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