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서울시 사례정의가 맞았다

국민일보

[내일을 열며] 서울시 사례정의가 맞았다

김재중 사회2부 선임기자

입력 2020-05-21 04:06

무증상과 감염경로 미상. ‘조용한 전파자’의 번식 조건이다. 생활방역 체계로 전환한 이후 성공적 방역의 관건은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무증상 감염, 즉 조용한 전파자를 미리 찾아내 지역사회 확산을 막는 것이다.

서울 이태원 클럽 관련 확진자의 약 36%가 무증상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전파력이 강한 젊은이들 가운데 무증상 확진자가 많다. 삼성서울병원 확진 간호사 4명 중 2명도 무증상이고 첫 확진자의 감염경로도 불투명하다. 이처럼 감염경로가 불분명한 경우는 전체 확진자의 5% 정도 된다. 신규 확진자 수가 한 자릿수로 떨어져도 불안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조용한 전파자를 미리 찾아내기 위해선 선제적인 검사가 요구된다. 서울시가 가장 먼저 ‘선제 검사위원회’를 설치하고 20일 첫 회의를 열었다. 선제 검사 방식으로는 풀링 기법이 동원될 예정이다. 풀링 기법이란 검사 대상 검체를 각각 채취한 뒤 취합해 한번에 PCR(중합효소연쇄반응) 검사를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음성이 나오면 모두 음성으로 판단하고, 양성이 나오면 개별검사를 진행하게 된다. 풀링 기법은 특정 집단의 감염 여부를 빠르게 진단할 수 있는 검사 방식이다. 정부도 18일부터 입영 장병에 대해 풀링 기법으로 전수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올가을 2차 대유행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무증상 감염자에 의한 조용한 전파를 사전에 체크하고 막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경로를 알 수 없는 감염을 막기 위해서는 방역주체로서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시민참여 방역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박 시장은 코로나19 사태 초기였던 지난 2월 25일 서울 25개 자치구 보건소장들과 가진 영상회의에서 의심증상이 없어도 검사를 원하는 시민은 누구나 검사를 받도록 하겠다고 했다. 신천지발 집단감염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신천지가 정확한 교인 명단을 제출하지 않고 신도들은 숨어들 때였다. 시민들은 언제, 어디에서 신천지 교인과 접촉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박 시장은 “서울시의 감염병 감시대상 사례정의를 증상이 있든 없든 내 몸이 이상하다고 생각해 선별진료소를 찾아오는 사람으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선언이었다.

하지만 이태원 클럽 및 삼성서울병원 집단감염을 계기로 서울형 사례정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서울형 사례정의는 코로나19와 관련해 불안 및 의심증상으로 선별진료를 원하는 시민은 누구나 즉시 상담 및 진료에 따라 검사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도 “현재 환자 신고체계는 증상이 있어서 의료기관에 와야만 진단이 되는 것이어서 상당히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익명검사를 도입했는데도 5월 초 이태원 일대 방문자 중 상당수가 아직도 검사를 받지 않고 있다. 클럽발 4차 감염까지 발생한 터라 방역망을 벗어난 조용한 전파자가 어디까지 침투했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삼성서울병원 사례에서 보듯 조용한 전파자의 불씨가 곳곳에 남아 있고, 어디서든 집단감염으로 번질 수 있다. 밀폐된 장소에서 불특정 다수와 접촉했다면 누구든 불안할 수 있다. 이 경우 자발적으로 검사를 받을 수 있게 하면 예상치 않은 조용한 전파자와 감염경로가 드러날 수 있다.

코로나19는 장기화가 불가피하고 언제든지 산발적인 감염과 재유행이 발생할 수 있다. 정부가 검사 대상을 넓히는 서울형 사례정의를 전국에 확대 적용해야 할 이유다.

김재중 사회2부 선임기자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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