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명숙 사건 재조사 압박하는 민주당, 177석 오만 아닌가

국민일보

[사설] 한명숙 사건 재조사 압박하는 민주당, 177석 오만 아닌가

입력 2020-05-21 04:01
더불어민주당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20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전 총리가 “검찰의 강압 수사, 사법 농단의 피해자”라며 “법무부와 검찰은 부처와 기관의 명예를, 법원은 사법부의 명예를 걸고 스스로 진실을 밝히는 일에 즉시 착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주민 최고위원도 당시 검찰의 정치개입 가능성을 거론하며 김 원내대표를 거들었고 김종민 의원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한 전 총리 사건은 ‘국가권력에 의한 불법이나 범죄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재조사 불가피론에 불을 지폈다. 조직적으로 공론화에 나선 모양새다.

이 사건은 한 전 총리가 2007년 한신건영 대표였던 한만호씨로부터 9억원을 받은 혐의로 2010년 기소된 사건이다. 1심에서는 한씨가 돈을 줬다고 한 검찰에서의 진술을 번복한 끝에 무죄가 선고됐지만 2심 재판부는 검찰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해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년형을 선고했고 대법원도 2015년 전원합의체에서 원심을 확정했다. 사법부의 최종적인 판단이 끝난 사건인데 민주당이 이제 와서 재조사를 해야 한다고 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김 원내대표가 재조사 필요성의 근거로 제시한 것은 고인이 된 한만호씨의 옥중 비망록이다. 비망록에는 검찰의 강요에 못 이겨 9억원을 줬다는 거짓 진술을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새롭고 결정적인 증거가 나타나면 재심을 할 길은 열려 있다. 하지만 한 전 총리 사건은 이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비망록은 1~3심에서 증거로 제출돼 이미 법적 판단을 받은 문건이다. 더욱이 한씨는 재판에서 ‘돈을 주지 않았다’고 위증한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기까지 했다. 그런 한씨의 비망록을 들어 재조사를 요구하는 것은 억지다. 대법원 재판에서 소수의견을 낸 5명의 대법관들조차도 한 전 총리가 3억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막연한 의혹만으로 당시 수사와 재판이 잘못됐다고 몰아가는 것은 사법체계의 안정성을 흔드는 무책임한 행위다. 당장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의혹 제기만으로 과거의 재판이 잘못됐다는 식으로 비칠까 염려가 된다”고 우려했다. 당사자인 한 전 총리가 사법부에 재심을 신청해 판단을 구한다면 모르겠으나 민주당이 전면에 나서 검찰과 사법부를 압박하는 것은 옳지 않다. 177석 거대 여당이 위세를 떠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민주당은 긁어 부스럼 만들 게 뻔한 재조사 압박을 당장 중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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