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청와대 국민청원이 가짜뉴스 공급처 되다니…

국민일보

[사설] 청와대 국민청원이 가짜뉴스 공급처 되다니…

입력 2020-05-21 04:03
생후 25개월 된 딸이 이웃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생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청와대 국민청원이 거짓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23일 처음 올라온 이 청원에는 국민 53만3883명이 동의했다. 그런데 애초부터 성폭행(추행) 사실이 없었을 뿐 아니라 가해 초등학생은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청와대가 문재인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2017년 8월 이 국민소통 플랫폼을 신설할 때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국민과 직접 소통하겠다는 명분을 나무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부적절한 내용이나 가짜뉴스를 거를 수 있는 최소한의 필터링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국민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듣는다며 네이버, 카카오, 페이스북 아이디 등을 통해 청원할 수 있게 했다. 사실상 익명으로 어떤 내용이든 국민청원 사이트에 올릴 수 있다. 그나마 ‘25개월 딸 성폭행’ 청원이 거짓으로 드러난 것도 한 달 내 20만명 이상이 동의하면 청와대가 답변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20만명 이상이 동의했지만 거짓으로 판명된 청원은 이외에도 2건이 더 있다. 20만명 미만 청원으로 대상을 넓히면 지난 3년여간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총 44만여건 중 허위·과장·오인 청원은 수천건이 될 것이다.

특정 개인을 과도하게 공격하고 사회적 갈등을 조장할 우려도 크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F조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장현수 선수의 패스 실수가 실점으로 이어지자 “국가대표에서 영구제명하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깊은 논의가 필요한 이슈를 즉흥적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민주주의를 저해한다는 지적도 오래전부터 나왔다. 국민청원을 신설하는 데 깊이 관여한 정혜승 전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은 “국민이 분노를 털어놓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공간이 필요하다”며 “국민의 놀이터가 될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놀이터가 아니라 가짜뉴스 배양처가 될 판이다.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과장되거나 틀린 청원이 수십만 국민의 동의를 얻는다는 건 황당한 일이다. 필터링을 강화하거나 실명으로만 청원을 올리게 하는 등 국민청원 운영방식을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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