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문화] 박수 대신 비상등·클랙션… ‘드라이브 인 콘서트’ 뜬다

국민일보

[And 문화] 박수 대신 비상등·클랙션… ‘드라이브 인 콘서트’ 뜬다

코로나가 바꾼 문화산업

입력 2020-05-21 21:30 수정 2020-05-21 21:45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자동차 안에서 문화 콘텐츠를 즐기는 ‘드라이브 인 시어터(자동차극장)’가 붐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뿐 아니라 콘서트 등 공연까지도 ‘드라이브 인’ 방식으로 선보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5일 용인문화재단 주최로 국내에서 처음 열린 ‘드라이브 인 콘서트’ 풍경. 관객들이 박수 대신 자동차 깜빡이와 휴대전화 불빛으로 가수에게 환호하고 있다. 용인문화재단 제공

차 안에 앉아 문화 콘텐츠를 즐기는 ‘드라이브 인’ 시스템은 전 세계 문화산업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드라이브 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 속에서 코로나19 시대의 절대 명제 ‘언택트’를 실현할 유일한 문화 향유 대안으로 떠올랐다.

트렌드에 발맞춰 세계 곳곳의 예술기관(단체) 등도 다채로운 ‘드라이브 인’ 공연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속속 문을 닫던 국내외 ‘드라이브 인 시어터(자동차극장)’에 차를 몰고 온 관람객들이 빽빽이 들어차는가 하면, 이색적인 공간을 활용한 자동차극장도 등장해 세계인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오페라·콘서트·무용 등 공연예술과 자동차극장 시스템을 결합한 사례도 부지기수다.

지구촌 메가트렌드가 된 자동차극장

지난 1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는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금지됐던 자동차극장이 문을 열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면서 지난 2월부터 이란에선 영화관과 공연장 등의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테헤란 시는 답답한 생활을 하는 시민들을 위해 야외 주차장에 임시로 대형 스크린을 설치했다.

이슬람교 율법에선 가족이 아닌 남녀가 실내에서 단둘이 있는 것을 금지하지만 테헤란의 자동차극장은 가족관계 증명서 없이도 남녀가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이란 내 보수파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동차극장은 대중의 열렬한 지지 속에 성업중이다.

코로나19의 장기화 속에서 구미 각국에서도 새로운 자동차극장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3개월 만에 30개의 자동차극장이 새로 만들어졌으며 앞으로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독일 일간지 도이치벨레는 “자동차극장이 독일에서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주말이 아닌 주중에도 매진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는 지난달 29일부터 코로나19 여파로 비행기 운항이 거의 중단된 국제공항이 자동차극장으로 변신했다. 빌뉴스 국제영화제 사무국은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공항 측과 협의 끝에 건물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비행기 운항이 요즘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 매일 밤 공항 주차장에는 200여대의 자동차가 몰린다.

자동차극장의 고향인 미국 역시 영화관이 대부분 폐쇄되면서 305개의 자동차극장이 호황을 맞은 상태다. 한국 역시 수도권의 자동차극장 관객 수가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최소 수십 퍼센트가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입장료가 자동차 1대당 2만원 안팎이라서 2인 이상 타면 일반 영화관보다 저렴한 가격에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경기도 파주시에서 자유로자동차극장을 관리하는 윤혜경 실장은 “코로나19가 빠르게 퍼진 2~3월에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50% 정도 관객이 늘었다”며 “5월 하순 현재는 신작이 많지 않아 조금 줄었지만, 여전히 지난해보단 10% 정도 높은 수준”이라고 전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덴마크 오르후스와 지난 16일 라트비아 아다지에서 각각 열린 ‘드라이브 인 콘서트’ 전경(위부터). 야외 스포츠 경기장과 주차장에 각각 임시 무대를 마련해 공연을 열고 있다. AP·EPA연합뉴스

콘서트도 오페라도 자동차극장에서

코로나19 시대에 자동차극장의 가능성은 영화 외에 여러 분야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 무관중을 전제로 재개 움직임을 보이는 프로 스포츠가 대표적이다. 이미 여러 종목의 구단들이 자동차극장에서 경기 중계 하는 것을 계획중이다. 팬들이 경기장에서 좋아하는 팀과 선수를 연호하며 함께 관람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자동차극장에서나마 그 즐거움을 느끼게 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실제 라이브 공연에서도 자동차극장이 도입됐다. 자동차 창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 다소 답답하지만 감염에 취약한 실내 공연장을 대신해 안전하게 공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중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온라인 라디오 방송국이 야외 주차장에 무대를 만들고 지역 뮤지션들의 연주를 선보인 것은 드라이브 인 콘서트의 효시 격이다. 자동차에 탄 시민들은 콘서트가 끝났을 때 경적을 울리고 깜빡이를 켜는 방식으로 뮤지션들에게 환호했다. 이후 컨트리음악 스타인 키스 어반 등 유명 가수들도 나서고 있으며 대형 콘서트 기획사들은 콘서트에 적합한 주차장이나 공터를 찾아 나섰다. 또 독일의 클럽은 드라이브 인 레이브 파티를 열어 세계적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클래식음악에서도 드라이브 인 콘서트가 등장했다. 독일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크리첼은 지난 9일 소도시 이절론에서 세계 최초로 드라이브 인 리사이틀을 열었다. 크리첼은 영화관의 야외 주차장에 무대를 세운 뒤 자동차 1대당 32유로의 입장료를 받고 베토벤과 리스트를 연주했다. 또 영국에서는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ENO)가 오는 9월 런던 북부 공원에서 세계 최초로 드라이브 인 오페라를 시도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드라이브 인 콘서트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용인문화재단이 지난달 25일 용인시민체육공원에서 국내에서 처음 시도한 이후 서울 서초구, 진주, 일산 등에서 등장했다. 서초구는 아예 5월 한 달 동안 매주 일요일 저녁 서초구청 야외 특설무대에서 ‘서리풀 드라이브 인 콘서트’를 선보이고 있다.

최근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 6월부터 공연 재개 계획을 밝히고 있지만 무대와 객석 모두 ‘거리두기’ 준수가 필수적이다. 현재 규정대로라면 공연장은 기존 좌석의 20~25%만 팔 수 있기 때문에 자동차극장이 수익 면에서도 낫다는 지적이다.

한국에서 오는 23일 강원도 주최 ‘DMZ 평화이음 드라이브 인 콘서트’가 유료로 열리는데, 티켓 예매 일주일만에 500대 분량이 매진됐다.

물론 공연계의 ‘드라이브 인’ 시스템은 과제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라디오로 음향을 전달하는 만큼 라이브 공연의 생생하고 섬세한 소리를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관건이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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