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산불 속 술판’ 프레임 논쟁, 이제 그만

국민일보

[세상만사] ‘산불 속 술판’ 프레임 논쟁, 이제 그만

김재산 사회2부 국장

입력 2020-05-22 04:03

지난달 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산불은 강풍을 타고 세계문화유산 ‘병산서원’ 앞까지 넘실거렸다. 고속도로 통행이 금지될 정도로 사나웠던 불길은 사흘째 겨우 잡혔고 병산서원은 참사를 모면했다. 대규모 산림 피해가 났지만 인명 피해는 없었다. 신속한 판단으로 주민을 대피시켰기 때문이다. 마을마다 소방차를 배치해 불길을 막은 덕분이다. 경북도가 이 정도 피해로 막아낸 사실이 놀랍다는 평가가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소방 당국에서 날아들었다. 이쯤이면 사흘 밤낮 연기를 마시며 악전고투한 관계자들에게 박수를 보냄이 마땅하다. 주민들도 이들의 노력으로 그나마 피해가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이철우 경북지사에게 “병산서원을 지켜줘 고맙다”고 했고, 정세균 국무총리 역시 노고를 치하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경북도 주변에선 ‘산불 속 술판’이라는 프레임 아래 소모적인 논란이 계속된다. 논란의 실체를 제대로 들여다보자. 지난달 24일 오후 이 지사는 도내 국회의원 당선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만찬까지 이어진 일정은 오래전에 잡혀 있었다. 간담회가 끝나고 경북도청 서문 앞 식당에서 진행된 만찬엔 도청 간부 대부분이 참석했다. 국비 확보와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한 얘기가 오갔다. 국회의원 당선자들과의 첫 만남이다 보니 건배도 몇 차례 있었다. 산불은 그 시각에 발생했고 도청 인근이었다.

경북도 내 산불은 연간 100여 차례 발생한다. 산불 현장지휘권은 관할 시장·군수에게 있다. 이 때문에 광역단체장이 산불현장을 찾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이 지사가 조치를 소홀하게 한 것도 아니다. 만찬 전 산불 발생 사실을 알고 재난안전실장 환경산림자원국장 소방본부장 등 간부 3명을 만찬에서 제외시켜 현장과 사무실에 대기시켰다. 만찬 중 현장에 있던 담당국장으로부터 “강풍 때문에 진화가 어려울 것 같다”는 보고를 받았다. 권영세 안동시장은 이 지사에게 현장방문을 만류했다. 그런데도 이 지사는 행정부지사를 현장으로 보냈고 식사 자리도 바로 정리했다. 산불이 확산돼 화재 통제권이 안동시장에서 경북지사에게로 넘어온 저녁 8시 이전이었다. 이게 ‘술판’으로 알려진 만찬의 팩트다.

다수의 매체는 이를 ‘만찬’으로 판단했지만 일부는 “산불이 활활 타는데 도지사는 인근에서 술판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기사를 접하는 독자들은 즉각 분노하고 댓글 융단폭격을 가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건배주 몇 잔 오간 게 ‘술판’이라 부풀려진 과정을 독자들은 알 리가 없다.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 일은 ‘산불 속 술판’이라는 프레임 아래 경북도의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합세하는 형국으로 확대됐다. 이런 논란 속에서 이 지사는 최근 경북도의회 본회의에서 민주당 의원들의 집단 항의를 받고 유감을 표명해야 했다. 하지만 여당 도의원들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정회가 선포되는 등 의회는 파행을 맞았다. 다른 지역 여권 정치인은 생뚱맞게 이 지사의 제명까지 거론했다.

이쯤 되면 저의가 의심스럽다. 야당 도지사에 대한 정치적 공격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와각지쟁(蝸角之爭)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달팽이 더듬이 위에서의 다툼’이라는 뜻이다. ‘하찮고 부질없는 다툼을 하지 말라’는 경구다. 전국 17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야당 단체장은 대구시장과 경북지사뿐이다. 대구와 경북은 지난 총선으로 정치적 고립을 면할 수 없게 된 어려운 처지다. 지역발전에 역행하는 소모적 논쟁은 이제 멈추자. 지금은 살아남기 위해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시기라는 사실을 제발 잊지 말자.

김재산 사회2부 국장 jskimkb@kmib.co.kr

포토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