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 미·중 대립에 위기의식이 없다

국민일보

[한반도포커스] 미·중 대립에 위기의식이 없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입력 2020-05-25 04:03

미·중의 대립은 1970년대 이래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중의 대립을 신냉전으로 보는 경향도 있지만, 적절한 인식은 아니다. 미·소 냉전 시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우선 중국은 소련과 달리 공산주의를 세계로 확산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미·중의 대립은 이데올로기 경쟁보다는 경제, 군사 영역의 갈등이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적 교역이 적었던 미·소와는 대조적으로 미·중은 경제적 상호연관성이 매우 깊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미·중의 갈등은 점차 체제 경쟁(이데올로기)의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 내 코로나 사망자가 베트남전 때보다 넘어서면서 미국인의 분노는 중국 공산당 체제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미국 정가에서는 중국이 초기에 코로나 감염을 은폐하는 바람에 미국인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언론 자유를 제한하고 강권을 펴는 중국의 공산당 체제 때문이라는 논리로 번지고 있다. 반면 중국은 코로나 사태를 빨리 수습했지만 미·유럽은 아직도 심각한 상황인 것에 우월감마저 느끼고 있다. 중국은 “미·유럽의 민주주의 체제보다 공산당 체제가 뛰어나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중국 공산당 내에서는 “홍콩 시위나 코로나를 이용해 미국이 중국을 약화할 생각이다”는 음모론이 미국 불신을 확산시키고 있다.

미·중 대립이 통상, 하이테크, 해양 주도권 경쟁에서 체제(이데올로기) 갈등으로 확산되면 그 양상은 더욱 격화될 수밖에 없다. 냉전 시기를 보더라도 이데올로기 대립은 양 진영의 타협을 불가능하게 했다. 최근까지 미·중은 경제의 상호의존성으로 인해 타협과 갈등을 반복해 왔지만, 코로나 위기로 인해 미·중 경제의 디커플링(분리) 흐름은 더욱더 빨라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세제 우대책이나 정부 보조금을 활용해 중국 경제 의존도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15일 화웨이에 사실상 금수 조치를 내리고 인권탄압을 이유로 33개 중국 회사와 기관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미국의 대중 강경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때리기’로 정치적 이익을 얻고 미국 내 코로나 감염 확대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로 풀이될 수 있다. 그러나 배경에는 중국에 대한 짙은 불신이 있다. 화웨이 강경조치를 취하면서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가 “중국 공산당의 정책이 빚어낸 도전에 미국이 임하고 있을 뿐”이라고 언급한데서도 미국의 정서를 읽을 수 있다.

미국을 맞받아치는 중국의 대미 자세도 국제관계에 악영향을 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중국의 환구시보는 “보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국민의 감정을 부추긴다. 16일 중국 외교부 자오리젠(趙立堅) 대변인은 “중국 정부는 중국 기업의 권익을 단호히 지킬 것이다”라고 미국을 자극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미국이 신형 코로나 대책에 쫓기는 틈을 타서 남중국해에서 세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대만의 방공식별구역에 침범하는 등 중국의 대만 위협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처럼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선제적인 포석을 마련하고 있다.

문제는 미·중 대립이 격화되면서 한국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이 됐다. 우선 미국의 국가안보나 외교정책에 반하는 행동으로 인식되면 미국 기술과 시장에 접근할 수 없게 됐다. 반면 중국의 압박도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실제 업계에선 “화웨이가 삼성전자에 스마트폰용 통신반도체 ‘엑시노스’ 납품을 요청할 것”이란 얘기가 흘러나온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미·중 대립 격화에 따른 위기의식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미·중 대립의 불똥이 코앞에 떨어지고 있는데도 무감하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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