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 200명이 모이면 대형교회다

국민일보

성도 200명이 모이면 대형교회다

[이강우 목사의 코로나19는 교회혁신의 기회다] <4>

입력 2020-05-25 00:07
  • 미션라이프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오늘날 한국교회에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는 교회가 교회 자신을 모르는 데서 출발한다. 다른 말로 교회에 소속된 성도들이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이심을 실감하지 못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면 갈지자 행보를 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6장 15절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어보신다. 정답은 이렇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 예수님은 주인이시며 나는 종이라는 말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이시며, 우리는 몸이라는 것이다. 세상을 이기는 힘은 우리의 힘이 아닌 예수님께서 전능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에서 온다.(요일 5:4~5)

문제는 이 사실을 교회가 인정하지 않으면 심각한 오류에 빠지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성도 수가 좀 적으면 ‘우리 교회에는 예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러니 교회의 힘이 점점 빠진다.

생각해보자. 성도 숫자가 많으면 예수님이 계시고 숫자가 적으면 예수님이 안 계시는 걸까. 목회자도 머리로는 예수님이 함께하신다고 믿지만, 가슴으로는 그 믿음대로 행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교회가 힘을 잃는 진짜 이유가 있다. 비교의식 때문이다. 이런 잘못된 의식은 ‘저쪽 대형교회는 힘 있는 예수님이 계시고 우리 작은교회는 힘 있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생각에 빠지게 한다.

목회자의 비교의식은 예수님이 주신 생각이 아니다. 이사야서 14장을 보면 원수 마귀가 지극히 높은 하나님과 같아지고 싶어 비교의식을 갖고 교만해진다. 결과는 영원한 추락이었다. 그것이 마귀의 인생이다.

비교의식은 사탄의 영향력이 교회 안으로 흘러들어오도록 돕는다. 비교를 시작하면 사탄의 영향력에 들어가는 문을 여는 것과 같다. 비교의식이 생기기 시작하면 사역을 무기력하게 만들며 자칫 생명력까지 잃게 만든다.

대형교회는 대형교회대로, 작은교회는 작은교회대로 해야 할 일이 있다.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다양한 교회는 서로 비교 대상이 아니다. 머리가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새끼발가락이 머리를 비난한다고 해보자. 얼마나 우스운 이야기인가. 새끼발가락은 온전히 서 있기 위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그래야 머리도 제 역할을 하고 몸 전체가 건강해진다.

비교하는 순간 우리는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이 주인이 되지 않고 ‘비교 주체’인 내가 주인이 된다. 이것이 교회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출발점이 된다.

진짜 대형교회, 큰 교회가 어떤 교회일까. 20명이 모이든, 200명이 모이든 예수님이 크다고 평가하신다면 진짜 대형교회가 된다. 예수님의 판단 기준은 숫자가 아니라 순종의 여부다.

서울 좋은나무교회는 예배 참석자가 성인 240여명, 아이들까지 370명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조국교회를 위해 할 일이 무엇인지 기도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어려운 교회의 임차료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좋은나무교회는 부채가 17억원이 있다. 성도 중에 특별한 부자는 없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코로나19로 고통에 빠진 이웃교회를 돕는 것이 예수님의 뜻이라는 생각에 1억원 넘는 헌금을 모아 50개 교회를 섬겼다.

코로나19 사태 중에 작은교회를 후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봤을 때 기회였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사역에 편승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환심을 살 최고의 기회였다.

신약시대 대형교회인 예루살렘교회가 힘들 때 작고 연약한 마게도냐교회가 그들을 도왔다. 그때 예수님께서 감동하셨음을 성경에 말씀한다. 조국교회가 코로나19 사태 속 이웃교회의 아픔을 보듬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주님께서 ‘대형’교회에 말씀하신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2:7)

이강우 목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