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액 찬스’ 버디로 치고 받고, 사이좋게 무승부

국민일보

‘증액 찬스’ 버디로 치고 받고, 사이좋게 무승부

고진영·박성현, 현대카드 슈퍼매치 불꽃 튀는 맞대결

입력 2020-05-25 04:01
박성현이 24일 인천 중구 운서동 스카이72 골프앤리조트에서 열린 현대카드 슈퍼매치 3번 홀에서 퍼트 거리를 재고 있다. 현대카드 제공

여자골프 세계 랭킹 1위 고진영(25)과 3위 박성현(27)의 현대카드 슈퍼매치가 펼쳐진 24일 인천 중구 운서동 스카이72 골프앤리조트 13번 홀. 기준타수 4타로 불과 350야드를 완주하는 이 홀은 쉽게 공략할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곳곳의 벙커가 티샷의 안착 지점을 시각적으로 교란하는 곳이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를 포함한 정규 대회에서는 4번 홀로 사용된다.

경기는 각 홀마다 걸린 상금을 승리한 선수에게 지급해 더 많은 총액을 겨루는 스킨스게임으로 진행됐다. 이 홀에 도달해서야 스킨스게임의 묘미가 극대화됐다. 이 홀에 걸린 상금 600만원은 앞선 두 홀에서 연속 무승부로 누적된 이월액 800만원, 바로 직전 12번 홀(파3)에서 투입된 박성현의 ‘증액 찬스’ 1000만원을 합산한 2400만원까지 불어났다. 고진영은 특유의 정교한 세컨드샷을 홀컵 5m 앞에 붙인 뒤 버디 퍼트에 성공해 이 상금을 손에 넣었다.

박성현의 퍼트는 홀컵 바로 앞에 멈춰 섰다. 고작 한 뼘쯤 되는 거리였다. 시종일관 굳었던 고진영의 얼굴에 미소가 만개했다. 고진영의 누적 상금은 4000만원으로 불어났다. 박성현은 이때까지 1200만원을 수확했다. 승부가 고진영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박성현은 결코 호락호락하게 무너지지 않았다. 고진영보다 1년 빠른 2017년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로 데뷔해 상대적으로 많은 경험을 쌓은 박성현은 침착했다. 경기를 앞두고 방문한 클럽하우스 미디어센터에서 “한방을 노리겠다”던 박성현이었다. 그 ‘한방’이 박성현을 외면하지 않았다.

박성현은 이후의 홀을 차근차근 가져가며 상금을 2400만원까지 늘린 17번 홀(파3)에서 기어이 승부를 뒤집었다. 이번에는 고진영이 ‘증액 찬스’를 박성현에게 헌납했다. 고진영은 상금 800만원과 무승부 이월액 800만원, 자신의 ‘증액 찬스’ 1000만원을 포함해 누적 상금 2600만원이 걸린 이 홀을 파로 마쳤다. 이때 박성현은 6m짜리 버디 퍼트를 잡고 상금을 단숨에 5000만원으로 불렸다. 승부에 쐐기를 박으려던 고진영의 상금은 4000만원에서 늘어나지 않았다.

이제 남은 홀은 상금 1000만원으로 최고액이 걸린 18번 홀(파4). 고진영은 자신의 강점인 정교한 아이언샷과 침착한 퍼트 감각을 이 홀에서 발휘했다. 고진영은 5m 거리의 버디 퍼트를 성공시킨 반면, 박성현의 퍼트는 홀컵에 이르지 못했다. 마지막 상금 1000만원은 고진영의 몫이 됐다. 그렇게 두 선수가 약속한 것처럼 총상금 1억원을 5000만원씩 나누고 사상 첫 맞대결을 무승부로 끝냈다.

두 선수의 대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서 세계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처음으로 이뤄진 톱랭커 간 맞대결이다. 물러설 수 없는 자존심이 세계에서 쏠린 이목과 맞물려 경기 내내 긴장감을 고조했다. 하지만 두 선수는 경기를 마치고 웃는 얼굴로 팔을 부딪치며 서로를 격려했다.

1번 홀에서 티샷하는 고진영. 현대카드 제공

고진영은 “재미있었다. 상금을 사이좋게 절반씩 나누고 가장 좋은 결과를 냈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성현은 “마지막 홀에서 (고)진영이가 버디 퍼트를 넣으면 깔끔하게 끝나겠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이 됐다”며 웃었다. 고진영의 상금은 밀알복지재단, 박성현의 상금은 서울대 어린이병원으로 전달된다.

인천=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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