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공용 음식에 버무려진 민족우월주의

국민일보

[너섬情談] 공용 음식에 버무려진 민족우월주의

황교익 (칼럼니스트)

입력 2020-05-27 04:06

“독상 제도를 버리고 전 가족이 한 밥상머리에 모여 앉어서 화긔애애한 중에 가치 먹으면 식욕도 증진되고 반찬이 적어도 후정거리지 안코 또 남는 반찬이 별로 없는 만큼 그것의 처치에 곤난한 점이 없을 것이다.”

1936년 동아일보는 ‘외상을 절대 폐지, 가족이 한 식탁에’라는 캠페인 기사를 내놓는다. 당시에 독상은 어떻게 차려지는지가 1935년 동아일보에 등장한다. ‘우리의 신생활운동’이라는 제목의 특집 지면이다. 이 기사에서는 각상이라 했다. “각 그릇에 각상을 보아 각방에서 각각 식사하는 번페를 곳치여서 한 자리 한 식상에 함께 모혀 한맘으로 함께 우스며 권커니 먹거니 하며 즐거운 심니로 영양을 섭취함이 그 얼마나 경제적이며 단란한 가정이라 하겟습니까.”

한국음식문화의 전통을 조선에서 찾는다면, 식탁에 공용 음식을 차려서 각자의 수저로 음식을 먹는 것은 전통이 아니라는 말을 오래전부터 했었다. 반발이 거칠었다. “우리는 인정이 넘치는 민족이라 한 그릇의 음식을 같이 먹는다”는 주장에다가 “양반이나 그랬지 인정 많은 민중은 그렇지 않았다”는 주장까지 보았다. 이때까지 언론을 통해 들었던 한국음식문화론과는 달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조선에서는 독상이 원칙이었다. 조선인의 취향에 따른 식사법이 아니다. 독상이 원칙이라고 하는 이유는 독상으로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게 하는 사회적 규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정에 따라 겸상을 하거나 한 그릇의 음식을 두고 여러 사람이 숟가락을 집어넣는 일도 있었겠으나, 이는 조선의 원칙이 아니다. 원칙이 강조되는 사회라 해도 자잘한 변칙이 존재하며, 일부의 변칙을 두고 보편적으로 존재했던 원칙을 부정하는 것은 비이성적이다.

조선은 유교 국가이다. 조선 왕은 유교 율법에 따라 국가를 운영했으며, 조선 백성은 유교 율법을 지키며 살았다. 유교 생활 율법에 남녀유별과 장유유서가 있다. 부부라 해도 한 방에서 생활하지 못했다. 남녀가 밥상에 마주앉아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어른과 아이, 그리고 가족의 서열은 엄중했다. 밥상을 받는 데에도 순서가 있었다. 남녀유별과 장유유서의 유교 생활 율법에 따라 밥상을 차려내려면 독상이 될 수밖에 없다. 유교 국가 조선의 밥상은 독상으로 차려지는 것이 원칙이다.

일제강점기에 들어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한 캠페인이 일었다. 1930년대 신문에 가족상을 권유하는 기사가 등장한 이유이다.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일은 가사노동에서의 해방을 위해, 가정의 화목을 위해 두루 좋은 일이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근대화 과정에서 외식업계가 가정에서의 상차림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전쟁 등으로 식기가 부족했던 탓이 컸다. 식당에서의 공용 음식이 일상화하면서 이를 “인정 많은 한국인의 오랜 전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인문학적 성찰이 부족한 이들이 왜곡된 한국음식문화론으로 민족우월주의, 심지어 인종차별주의를 부추겼다.

지구상의 인간은 사피엔스 딱 한 종이다. 피부색과 언어, 문화, 관습이 다르다 해도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심정’인 인정은 똑같이 가지고 있다. “한국인에게 인정이 많다”는 말은 다른 나라의 국민은 인정이 없거나 부족하다는 차별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지구의 모든 인간에게 인정이 있으며, 그 인정의 유무와 과다는 각 인간의 개별적 문제일 뿐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중략)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김구 선생 말씀이다. 코로나19로 외식공간에서의 공용 음식을 개선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상차림과 함께 바꾸어야 할 것이 있다. 한국음식문화론 곳곳에 박혀 있는 민족우월주의이다. ‘높은 문화의 힘’은 인종차별적 의식으로는 결코 얻어낼 수 없다.

황교익 (칼럼니스트)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