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연수 (18) “다일공동체도 무료 병원 하나 만들면 되잖아요”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김연수 (18) “다일공동체도 무료 병원 하나 만들면 되잖아요”

중풍 앓는 할머니 입원 거절에 충격받고 실의한 남편에게 588 주민들이 ‘봉투’

입력 2020-05-28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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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일천사병원을 건축 중이던 2000년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병원 부지 앞에서 찍은 사진. 가벽에 천사회원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다.

결혼해서 무엇보다 낯설었던 말은 사모님이라는 호칭이었다. 나는 목사나 전도사의 부인을 사모라 부른다는 것도 몰랐다. 그저 목사 사모보다 목사 부인으로 불리는 데 만족하고 싶었다. 몇몇 가까운 분들은 “사모의 소명을 확인하셨냐”고 물었지만 무슨 소명감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다일공동체 초창기 시절 사모로서 내 역할은 가정주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주일마다 커다란 들통에 가득 끓인 국과 김치를 챙겨 교회로 갔다.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안치고 예배가 끝난 후에 교인들과 식탁 교제를 나눴다.

본래 남편은 목사 부인은 목회자가 아니므로 가정을 돌보고, 교회 일은 교인들이 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교회 창립 후 3~4년이 지나도 교인 수는 좀처럼 늘지 않았다. 왔다 가는 이는 많았지만, 등록은 하지 않았다. 청량리로터리 가건물에 세 들어 있는 허름한 교회에, 그것도 가난한 신학생들과 노숙자, 무의탁 노인들이 어울려 드리는 예배에 가족과 함께 매주 와줄 사람을 만나긴 쉽지 않았다.

놀라운 건 그런 교회를 사람들이 점점 ‘어려울 때 찾는 곳’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깨진 독에 물 붓는 것 같던 사역이 나도 모르는 새 그 지역을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가까운 집에 불이 나도 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냐며 다일공동체로 왔다. 아픈 곳이 있어도 다일을 찾았고, 주변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데려오기도 했다. 남편은 그런 이들을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무료병원으로 연결해 줬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졌다. 중풍에 걸린 할머니 한 분을 병원에 입원시키려고 모시고 갔다가 그만 거절당한 것이다. 지난 5년간 입원 의뢰를 하면서 단 한 차례도 거절한 적 없던 병원이었다. 남편은 큰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병원 관계자가 “왜 개신교는 무료병원 하나 없습니까. 그렇게 큰 교회가 많은데”라고 던진 말에 급소를 찔린 사람처럼 주저앉고 말았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남편은 그때 하나님께 ‘개신교에 무료 병원이 없는 게 내 탓입니까. 대책이라도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따졌단다. 그리고 ‘일도야. 내 대책은 너다’라는 음성을 들었단다. 너무 뜻밖의 음성을 들은 남편은 못 들은 척하기로 마음먹고 아예 다일공동체 문을 닫아 버릴까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터벅터벅 청량리로 돌아온 남편을 기다린 건 생각지도 못한, 588번지에 사는 소외된 이웃들이었다. 그들은 할머니를 업고 나눔의 집으로 들어가는 남편의 윗주머니에 봉투 하나를 푹 찔러 넣고선 남편을 위로했다. 남편의 사연은 이미 다일공동체 형제들을 통해 들은 뒤였다. 구겨진 봉투에는 588번지 아주머니들과 직업여성들이 즉석에서 모은 47만5000원이 담겨 있었다. “다일공동체도 무료 병원 하나 만들면 되잖아요.”

다음 날 다일공동체 가족들과 다일 교인 모두가 모였다. “우리가 합시다.” 남편은 모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이 청량리 뒷골목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도록 우리부터, 나부터 보리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를 준비하자고 제안했다. 우린 각자 100만원씩 헌금하기로 약속했다. 한 달 후 1147만 5000원이 모였다. 우린 이 돈을 무료병원 설립을 위한 밀알 헌금으로 드렸다.

정리=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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