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홍콩 보안법과 중국의 전랑 외교

국민일보

[특파원 코너] 홍콩 보안법과 중국의 전랑 외교

노석철 특파원

입력 2020-05-27 04:03

홍콩 국가보안법이 28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폐막식에서 표결 처리된다. 전인대 표결의 3번째 안건이 ‘홍콩 국가안보를 수호하기 위한 법률 제도와 집행 기제’ 초안이다. ‘홍콩 내의 국가분열, 국가전복, 테러활동 처벌’ ‘외국의 내정간섭 금지’ ‘보안법 집행기관 설치’ 등을 담고 있다.

홍콩 보안법 시행 이후 변화는 최근 관영 글로벌타임스 기사에서 엿볼 수 있다. 신문은 홍콩의 반정부 인사인 빈과일보 사주 라이치잉이 페이스북에서 홍콩 보안법을 비판하자 “국가 보안기관에 ‘국가전복’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또 라이치잉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윗을 공유하고 공감을 표시해 “외국 세력과 결탁했다”는 비판을 받는다고도 했다. 톈페이룽 베이징항공우주대학 교수는 “홍콩의 법치를 훼손하고 외세와 결탁한 라이치잉은 국가보안법 처벌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홍콩 민주화 시위의 주역인 조슈아웡이 지난해 미국 의회에 ‘홍콩 인권법’ 통과를 호소한 것도 외세와 결탁한 증거라고 했다.

보안법이 시행되면 ‘광복홍콩 시대혁명’ ‘홍콩 독립’ 구호를 외치거나 성조기를 흔들며 시위하는 행위도 처벌 대상이 되고, ‘표현·집회·결사의 자유’ 역시 제약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홍콩 기본법 23조는 국가전복과 반란 선동, 국가안전 저해 행위에 대해 최장 30년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게다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가 보장된 홍콩의 법률 제정에 중국 정부가 직접 개입했다. 그래서 보안법 제정은 중국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항인치항(港人治港·홍콩은 홍콩인이 다스린다)과 고도의 자치를 파괴하는 것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홍콩에서는 중국 국가 연주 시 모욕적인 행동을 하거나 국가를 풍자·조롱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국가법(國歌法)’도 처리를 앞두고 있다. ‘홍콩은 중국의 영토다’라는 역사 교육도 강화된다. 홍콩의 중국화에 가속도가 붙는 분위기다.

홍콩은 한때 영국의 할양지로 서방의 ‘자유와 민주’라는 가치와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다. 하지만 중국식 통치 시스템이 조기에 이식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두 진영의 가치가 충돌하는 격전장이 됐다. 미국은 ‘홍콩의 자치권 훼손’을 이유로 무역과 투자, 비자 발급 등에서 홍콩에 부여한 특별 지위를 박탈하겠다고 경고하고, 유럽에서도 중국 견제론이 부상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세계 각국이 반발하면 움츠렸을 중국은 덩치가 커진 요즘 오히려 공세적이다. 서방 국가들의 대중국 경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독일 자동차 제조 업체는 이익의 35~50%가 중국 시장에서 나온다. 프랑스의 경우 중국이 항공기 구매의 최대 고객이다. 호주는 지난해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32.6%에 달했다. 중국은 최근 코로나19 발원지 갈등으로 호주산 소고기 수입 중단이란 카드를 꺼내들었다. 후시진 환구시보 편집장은 지난달 말 “호주는 중국의 신발 밑에 붙은, 씹던 껌처럼 느껴진다. 가끔 돌을 찾아 문질러줘야 한다”고 독설을 날렸다.

중국의 외교관들도 거친 언사를 쏟아내며 자국 이익을 대변하는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를 강력하게 펼치고 있다. “해외의 늑대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늑대전사를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도 거침없이 나온다. 중국은 늘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중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을 앞세워 세계 각국과 충돌하고 있다. 세계는 그동안 감춰졌던 중국의 본 모습을 보고 있다. 중국은 스스로 거칠게 밀어붙이면 세계가 고개를 숙인다고 보는 것일까.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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