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호의와 권리 사이

국민일보

[데스크시각] 호의와 권리 사이

김찬희 디지털뉴스센터장

입력 2020-05-28 04:02

“똑똑똑.”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들어온다. ‘[Web발신] [○○카드] ***님 정부 긴급재난지원금 사용: 9,000원 잔여: ***,***원.’

아내는 재난지원금을 신청하고 나서 갑자기 부자가 된 듯하다고 했다. 100만원이라는 크기보다 공돈이라는 ‘꼬리표’가 마음에 드는 눈치다. 기부하는 게 나을지, 그동안 우리가 낸 세금이 얼마인데, 우리가 기부할 정도 소득 수준은 아닌데 따위의 복잡한 셈법을 거치다 그냥 쓰기로 했다. 부지런히 쓰는 게 돕는 거라며. 2주가 지나는 동안 휴대전화는 하루에도 예닐곱 번은 울리고 있다.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을 두고 여러 말이 오간다. 한쪽에선 석 달에 한 번씩이라도 100만원을 꼬박꼬박 줘야 한다고 외친다. 그만큼 긴박한 상황이고, 경제가 파탄 날 수 있는 지경이라 비상한 수단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쪽에선 나라 곳간이 거덜난다고 한걱정을 한다. 국가 지원이 익숙해지고 이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른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로 여기는’ 불안한 흐름이 굳어진다고 한다. 공짜점심은 없고, 다 세금으로 돌아온다는 우려다.

걱정과 환호, 호의와 권리 사이에서 논란은 무성하지만 반기는 목소리가 조금 더 크다. 긴급재난지원금(정부)이든 재난기본소득(지방자치단체)이든 이름은 중요치 않다. 가계소득이 늘면서 지역경제가 살아난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도가 지난달 25일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더니 86%가 재난기본소득을 잘한 일로 꼽았다.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이 자영업자 488명에게 물었더니 56.1%는 매출 증가를 얘기했다. 생활자금 지원은 물론 실물경제에 온기를 불어넣는다는 목적이 어느 정도 달성되는 셈이다.

반짝 효과일지 아닐지 모르지만,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고 시장에 돈이 돌자 시선은 기본소득으로 옮겨간다. 긴급재난지원금, 아니 정확하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은 꽁꽁 묶여 있던 기본소득의 봉인을 뜯고 있다. 국회도 활기를 불어넣는다. 더불어민주당은 기본소득 도입법 발의를 준비 중이다. 지난 21일 열린 미래통합당 21대 당선인 워크숍에선 기본소득 도입을 검토하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진보와 보수, 여와 야를 가리지 않고 기본소득이 2022년 대선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리라 본다.

기본소득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단골이 4차 산업혁명이다. 인공지능(AI), 로봇이 산업현장에 광범위하게 보급되면 노동시장에 폭풍이 몰아칠 수밖에 없다. 과거 산업혁명은 낡은 일자리를 파괴하는 대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었지만, 이번 산업혁명은 일자리의 씨를 말린다는 예측에 무게가 실린다. 노동이 한 축을 차지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자리 실종은 위험신호다. 근로소득 감소, 실업자 증가는 소비 위축, 경기 침체, 대공황으로 연결될 수 있다.

기본소득은 갑자기 튀어나온 아이디어가 아니다. 1970년대부터 유럽에서 꾸준히 제기됐었고, 자본주의 최정상에 서 있는 미국에서도 활발하게 얘기된다. 논쟁은 늘 보편적 복지와 재정 악화 사이를 오간다. 누구에게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주는 게 맞느냐는 반론부터 막대한 재정 부담을 어떻게 해결하려느냐는 반격까지 튀어나온다.

정말 기본소득은 나라 곳간을 갉아먹는 포퓰리즘일까. 기본소득의 근원에는 노동시장과 소득분배 체계 붕괴라는 절박한 현실이 깔려 있다. 고용 없는 성장, 해소되지 않는 저임금, 사각지대를 노출하는 복지는 여기에 살을 붙인다. 노동이 일상을 꾸리는 도구인 동시에 자아실현의 수단인 상황에서 노동시장과 소득분배 체계의 오작동은 치명적이다. 정책 설계는 정부의 몫이다. 다만 달라지는 시대정신은 기본소득을 국가의 호의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에 올려놓는다.

김찬희 디지털뉴스센터장 c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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