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코로나 부고

국민일보

[내일을 열며] 코로나 부고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입력 2020-05-28 04:06

혹자는 부고(訃告) 기사를 ‘과거를 비추는 거대한 백미러’에 비유했고, 혹자는 ‘개인의 삶에 대한 사회적 기억’이라고 했다. 부고 기사는 인물의 사망 소식으로 시작해 과거와 현재,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사실과 평가를 넘나드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부고 기사의 최고봉으로는 자타공인 뉴욕타임스가 꼽힌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대표 정론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특히 1851년 창간호부터 계속 실어온 부고란은 북 리뷰와 더불어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뉴욕타임스 기자들의 부고면 제작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있고, 뉴욕타임스 부고 기사를 따로 모은 책이 국내에도 번역 출간될 정도이니 말이다. 부고 담당자인 윌리엄 맥도널드의 이력을 봐도 그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32년차 베테랑 기자로, 14년째 부고 기사를 책임지고 있다.

그런 뉴욕타임스가 부고로 또 하나의 기념비를 세웠다. 지난 24일자 신문 1면을 기사 한 줄, 사진 한 장 없이 코로나19로 사망한 1000명의 이름과 부고로 가득 채운 것이다. 미국 내 사망자 10만명이라는 암울한 이정표를 목전에 두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전례 없는 시도를 했다. 무엇보다 사망자가 누구였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설명하기 위해 애정과 위트가 담긴 문구를 넣었다. ‘조단 헤인즈, 27세, 아이오와, 유쾌한 미소를 가진 너그러운 청년’ ‘알랜 런드, 81세, 워싱턴, 가장 뛰어난 귀를 가진 지휘자’ ‘코비 아돌프, 44세, 시카고, 기업가이자 모험가’…. ‘그들은 우리였다’는 부제가 붙은 지면은 숙연하면서도 따뜻했다.

우리 신문에서 코로나19 희생자들은 ‘265번째 사망자, 82세 여성’ ‘성모(60)씨의 어머니 김모(86)씨’로 남았다. 희생자들에 관한 보도도 드물다. 국민일보가 지난 3월 유가족 6명을 수소문해 인터뷰한 ‘치명률 1.2%에 가려진 비극’ 시리즈가 국내 언론 중 가장 먼저 희생자들에 주목한 보도 중 하나였다. 어렵사리 만난 유가족들은 ‘개인 정보는 성과 나이만 써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낙인효과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 가족의 죽음을 주변에 알리고 슬픔을 함께 나눌 부고 기사는 언감생심이었던 것일까.

책 ‘부고의 사회학’을 쓴 이완수 동서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에게 뉴욕타임스 1면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이 교수는 “뉴욕타임스는 2001년 9·11 테러 때도 희생자 전원에 대한 부고 기사를 썼다”며 “코로나19 역시 특별한 사건으로 인한 집단적 죽음으로, 미디어가 다룰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고 했다. 이 교수는 “다만 미국·유럽과 한국 언론은 부고를 다루는 제작 관행에 차이가 많다”며 “한국 사회의 특성이지만 평범한 시민의 죽음을 다루는 기사는 없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부고 단신에 망자 자신의 이름이 등장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에 오른 유가족 이름과 직책, 발인 날짜, 빈소 안내가 나열될 뿐 고인에 대한 추모와 애도보다 날짜 놓치지 말고 빈소를 찾으라는 정보 제공에 가깝다. 이 교수는 “일반 시민으로 부고를 확장하면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기 때문에 부고 기사에 관심이 많다”고 덧붙였다.

죽음에 관한 책들을 들춰보다 ‘개관사정(蓋棺事定)’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관 뚜껑을 덮고 일을 정한다’는 뜻으로, 죽고 난 후에야 그 사람의 면모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어떤 문구로 남게 될까 새삼 옷깃을 여미게 된다. 진영싸움에 음모론까지 동원돼 연일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이들도 그러했으면 한다.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안식과 유가족들의 마음의 평안을 기원한다.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