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화면 밖에서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화면 밖에서

배승민 의사·교수

입력 2020-05-29 04:05

TV 다큐멘터리. 남편은 식사를 준비하는 아내 뒤에서 배고프다고 툴툴거리다 급기야 식탁을 차리는 중에 화를 버럭 내며 밥만 대충 먹고 일어나버린다. 남편의 불퉁한 태도가 너무하다 싶던 차에 뒤이어 그날의 남편 일과가 비춰진다. 자신이 늦으면 식사도 거르는 아내 생각에, 그는 점심도 거르고 일에 매달린 뒤 서둘러 퇴근한다. 고된 하루에 점심도 걸러 배가 고팠지만, 건강도 성치 않은 아내가 마음에 걸려 집으로 가는 그의 발걸음이 재다.

속이 부대끼니 사온 빵으로 간단히 저녁을 먹자고 해보는데, 아내는 속이 안 좋다는 남편 말에 저녁 한 끼라도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중간 중간 배고프다는 핑계로 남편은 상차림을 도우려 하지만, 아내는 신경 쓰인다며 그를 계속 쫓아낸다. 반찬이 너무 많다, 이 정도면 충분하니 이제 밥 좀 먹자는 그의 말도 요리하느라 바쁜 아내의 귀에는 마이동풍이다. 식사시간을 넘겨가며 또 새 반찬을 만드는 아내 모습에 남편은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내가 무거운 김장김치통을 꺼내며 비틀거리자 ‘그만 좀 해!’라며 폭발한 것이다. 이런 남편의 일과와 생각의 흐름을 보니 나쁘게만 보이던 그의 입장도 이해가 갔다.

부부의 양면이 이해되는 순간, 우리 삶의 모습도 이 다큐멘터리와 크게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자신이 보는 화면만 알 뿐 상대방 시선은 모른다. 상대방 상황을 추측해 볼 때도 있지만, 그 역시 내 입장에 치우친 경우가 다분하다. 내 화면 속 나는 당연히 이해가 가고 상대방만 비합리적으로 비춰지지만, 과연 그 사람의 화면 속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상대의 화면에서는 어떤 장면들이 흘러갔고 또 흘러가고 있을까. 내 시선에만 매몰되지 않으려면 한 번씩 영화나 드라마에서 앵글을 바꾸어 보듯, 상대방 시선에서 상황을 보는 시도를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어느새 TV 속 부부는 남은 누룽지를 끓여 나눠 먹으며 웃고 있다.

배승민 의사·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