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개의 침묵

국민일보

[혜윰노트] 개의 침묵

홍인혜 시인·웹툰작가

입력 2020-05-29 04:02

윗집 개가 짖는다. 벌써 몇 시간째다. 새된 소리로 껑껑 짖는 것으로 시작해, 마치 늑대처럼 먼 곳을 향해 목소리를 띄워 보내고 있다. 울음의 끝자락을 질질 끌며 서럽게 울부짖고 있다. 길게 길게 이어지는 그 애끓는 비명은 내 집의 고요를 찢고 나의 일상에 진득하게 내려앉는다. 나는 생각한다. 아, 윗집 사람들이 외출했구나.

층간소음에 오래 시달리며 자연히 알게 됐다. 윗집은 개를 키우는데 그 개는 평상시 놀랍도록 조용하다. 아마 그 ‘평상시’가 이어진다면 나는 윗집이 개를 키운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그 개는 불현듯 짖기 시작하고 그 울음은 몇 시간이나 멈추지 않는다. 여기서 ‘몇 시간’은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시간을 재본 적이 있는데 저러다 득음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장시간을 울부짖기에 놀란 적이 있다. 사람이라면 실신했을 정도로 농도 짙은 격정이 몇 시간이나 이어졌다.

인기척에 멍멍 짖는 정도라면 납득이나 가지, 몇 시간이나 비명 비슷한 소리를 내니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내 일상이 병들어가기 시작했다. 층간소음의 무서운 점은 예측할 수 없이 분노의 방아쇠가 당겨진다는 것이다. 언제 평화가 박살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삶을 사는 가운데 개는 목청이 트여갔고 나는 귀가 트여갔다. 엘리베이터 소리부터 이웃들이 드나드는 소리까지 내 주의를 거슬렀다. 그 결과 알게 된 사실은 윗집 개는 홀로 있을 때만 짖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누군가 떠나는 기척이 남과 동시에 짖기 시작하고 돌아옴과 함께 침묵했다.

이 점을 깨닫자 나는 막막해졌다. 그렇다면 저 개의 반려인들은 개의 다른 얼굴을 꿈에도 모를 것이 아닌가. 저렇게 과묵하고 점잖은 친구가 홀로 있을 때는 집요하게 짖는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못할 것이 아닌가. 내가 나서서 진실을 밝혀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나는 여성 1인 가구로서 누구보다 이웃 간의 마찰을 피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이 문제에 개선의 여지가 있느냐도 의심스러웠다. 저들은 개를 교육시키기 위해 얼마나 투자할 것인가. 개를 위해 집을 비우지 말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나의 불만 제기로 인해 개만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냥 넘어가자니 나의 고통도 만만치 않았다. 사소한 소음에도 분노의 급발진이 일어났다. 도무지 해결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이 문제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번민할 무렵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개가 조용해진 것이다. 짖는 소리 외에도 마룻바닥을 딛고 경쾌하게 달리는 소리나, 밥그릇을 달그락거리는 소리 모두 싹 사라졌다.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개가 얌전해진 것이 아니었다. 개가 사라진 것이었다. 실제로 이 건물에는 나 말고도 여러 가구가 살고 있고 모두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을 것이다. 항의가 이어졌을지도 모르고 누군가 적극적인 액션을 취했을지도 모른다. 뭐가 어찌됐든 개는 이 건물에서 사라졌다. 평화가 도래했다.

고요하고 평온한 어느 날 유튜브를 뒤적이다 우연히 개에 관련된 영상을 보게 됐다. 혼자가 되자 울음을 질질 끌며 흐느끼는 개를 보며 전문가는 말했다. 저것은 무리를 부르는 하울링이라고. 나는 윗집 개를 떠올렸다. 혼자 있는 것이 지독히 무서워서 몇 시간이고 무리를 부르며 서럽게 울었던 그 개. 그토록 가족을 부르고 또 불렀던 그 개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평안하고 행복할까. 나는 그 개가 진심으로 측은하고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느닷없이 박살나는 평화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이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개가 돌아온다면 나는 두 배, 아니 열 배로 화가 날지도 모른다. 이 아이러니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동물이 동물을 길들이고 기른다’는 것이 시작일까. 밀집된 인구로 인해 사람들이 겹을 이루고 살아야 하는 주거 형태의 문제일까. 층간소음조차 막지 못하는 건축산업의 문제일까. 소음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하지만 지금 내 마음은 더욱 시끄럽다.

홍인혜 시인·웹툰작가

아직 살만한 세상